[파이낸셜뉴스] 기업 공익재단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민간기부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선진국들이 주식 면세한도 면제 등을 통해 기부를 장려하는 반면, 한국은 33년 묵은 규제가 첨단 인재 육성 등을 위한 기부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계는 기업 공익재단을 통한 민간기부 활성화를 위해 세제 개편 등 법 개선을 촉구했다.
1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기업 공익법인 제도개선 과제 조사'에 따르면,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GI)에서 한국의 순위는 지난해 79위를 기록했다. 2013년 45위를 기록한 이래 10년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대한상의가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88개 그룹 소속 219개 공익재단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과반이 넘는 기업 공익법인(52.5%)은 "우리나라 기업재단의 국가·사회적 기여도가 낮은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상증세법상 면세한도는 공익재단의 우회적 기업 지배를 막기 위해 1991년 도입됐다.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기업재단에 기부할 경우, 재단은 발행주식총수의 5%까지만 상속세나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5%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최대 60%의 상증세를 납부해야 하는 규제다.
문제는 33년된 낡은 규제가 반도체·로봇 등 첨단산업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선한 기부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룹 소속 대학교의 창업 장려정책에 따라 로봇·정보기술(IT)·바이오 등 창업기업이 늘어나고 일부는 코스닥에 상장되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다"라면서도 "대학 도움으로 창업에 성공한 일부 교수들이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교원·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20% 이상 주식을 대학에 기부하려 했으나, 상증세법상 5% 면세한도 규제에 막혀 기부 자체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는 독일 등 유럽연합(EU)이 기업재단 출연주식 면세한도 없이 100% 면제하는 것과 상반된다. 미국은 면세한도가 있지만 2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기업재단 출연주식 면세한도를 5%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업재단의 계열회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도 원칙적 금지하는 '갈라파고스식' 공정거래법 규제까지 더해져 앞뒷문이 모두 막혀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 제한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갖더라도 의결권을 원칙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 임원의 선·해임이나 합병 등 특별한 경우에만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경제계는 민간기부 활성화를 위해 상승세법상 기업재단 주식 면세한도를 폐지하거나 미국처럼 20%로 상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제한도 일정 기간 유예 또는 폐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상증세법과 공정거래법을 함께 개선하기 어렵다면 현행 공정거래법을 통해 기업재단이 우회적 지배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만큼, 상증세법상 면세한도를 완화해 기업재단의 국가·사회적 기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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