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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참고서의 제왕 '완전정복'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15 18:05

수정 2024.08.15 18:05

[기업과 옛 신문광고] 참고서의 제왕 '완전정복'
초등학생의 참고서인 동아출판사의 '동아전과'와 교학사의 '표준전과'를 중장년층은 기억한다. 모든 과목이라는 뜻의 전과는 제2의 교과서로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전과의 양대 산맥 동아전과와 표준전과는 각각 '전과의 왕' '전과의 챔피언'이라고 자칭하던 라이벌이었다. 학원 공부와 인터넷 학습이 보편화되면서 전과도 사양길을 걸었다. 표준전과는 발행이 중단됐다.
1953년 처음 나온 동아전과는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되고 있지만 예전 같지 못하다.

동아출판사와 교학사의 전쟁은 중학교에서도 이어진다. 동아출판사의 '완전정복'과 교학사의 '필승'이다.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던 시절에 두 참고서는 초등학교의 전과처럼 학교 공부를 보완할 수 있는 필수교재였다. 굳이 우열을 따지자면 완전정복의 선호도가 더 높았다. 완전정복은 1978년 참고서 시장점유율 70%를 돌파했다.

1971학년도 판부터 발행된 완전정복 시리즈는 겉 표지에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그림을 실었다(사진).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실제로는 백마가 아닌 노새를 탔다고 한다. 위인전에는 반드시 등장하고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명언을 남긴 나폴레옹은 학습의욕을 돋우기에 좋은 인물이었다. 완전정복이나 필승은 과목별로 다 구입해야 했기에 학생들의 부담이 작지 않았다. 그래도 완전정복과 필승을 다 펴놓고 비교해 가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완전정복 첫 장을 넘기면 국민교육헌장과 유명한 명언, 속담이 나타났다.

완전정복과 동아전과는 '참고서의 황제'로 불렸던 동아출판사 창업자 고 김상문 회장(1915~2011)의 역작이다. 김 회장은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흥아공학원을 수료한 뒤 1941년 대구에서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몇 년 후 서울로 올라와 6·25전쟁 직전 동아출판사를 세우고 초·중등 교과서의 효시인 '신생국어독본'을 출간하는 등 주로 학습서와 참고서를 펴냈다.

완전정복과 동아전과의 빅 히트로 동아출판사는 큰 출판사로 성장해 승승장구했다. 1983년 1학기 동아출판사의 초·중·고 참고서 판매량은 4000만부를 넘어 전성기를 구가했다. 1978년 발간된 '동아 새국어사전'도 2000년대 후반까지 300만부가 팔려 사전으로는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김 회장의 필생의 꿈은 백과사전이었다. '문화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도 영국의 브리태니커 같은 백과사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소신이었다.

김 회장은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30권)' 편찬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동안 번 돈 대부분을 투자했다. 한 나라의 지식 수준은 백과사전의 품질에 달려 있다는 소명의식으로 마침내 백과사전 전권을 완간했다. 그 공로로 1983년 김 회장은 보관문화훈장과 제1회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예상보다 판매가 부진했고 김 회장이 출판계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는 TV 광고에까지 출연하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 회장은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다. 독약(비상)을 복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동아출판사는 1985년 두산그룹으로 넘어갔다. 백과사전만은 1996년 두산세계대백과사전(전30권)으로 살아남았다.

김 회장은 나이 일흔을 앞둔 1990년 상문출판사를 차려 재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백과사전에 대한 집념과 열정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동서문화사와 손 잡고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을 내놓은 것이다. 2004년에는 장수 비결을 담은 '100살 자신있다'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2014년 ㈜두산동아는 다시 YES24에 인수되어 동아출판㈜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동아출판은 초·중·고교생을 위한 참고서와 교과서를 주로 발행하고 있다.
출판업의 전반적인 불황과 학생 수 감소로 매출액은 점점 줄어 지난해 1050억원을 기록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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