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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성장의 5대 조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19 18:05

수정 2024.08.19 18:33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2010년만 해도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상위권이었으나 지금은 2.0%까지 떨어져 OECD 중간 수준에 그친다. 하락세는 계속되어 향후 5년간 연평균 잠재성장률은 1.5%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부터 10년간 평균 2.0% 수준으로 전망된다.

왜 미국은 우리보다 잠재성장률이 높을까. 잠재성장률은 생산요소 투입과 총요소생산성(TFP)으로 구성되는데 미국은 이민, 여성인력 등 투입요인은 물론 TFP 역시 우리를 크게 앞선다. 전경련(2023)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TFP는 미국의 61%에 불과하고 독일(93%), 프랑스(91%), 영국(79%), 일본(66%)보다도 낮다. TFP는 결국 각 주체의 역량과 동기(motivation)에 달려 있는데 동기가 있으면 역량도 함양되므로 결국 성장은 동기가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개인, 기업, 지역, 대학이 최선을 다할 것인가.

첫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기회의 적(敵)은 차별이다.
기회조차 없다면 개인이나 기업은 좌절하고 노력을 시작도 못할 것이다. 특히 성장배경에 따른 기회의 차별이 큰 문제이다. 초중등 교육의 질적 제고, 열린 창업생태계, 비수도권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둘째, 경쟁이 촉진돼야 한다. 경쟁의 적은 진입장벽, 불공정 경쟁, 칸막이다. 기업의 진입을 막는 대표적 제도는 포지티브 규제이다. 이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아울러 기존 기업 간의 불공정 행위는 철저히 단속되어야 한다. 칸막이 역시 경쟁을 약화시키고 효과적 자원배분을 훼손한다. 예컨대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에 주체별·분야별 칸막이가 존재하는 것은 문제이다.

셋째, 자율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최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자율의 적은 중앙정부이다.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해진 우리의 중앙정부는 기업, 대학, 지방의 자율을 제한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권한을 내려놓고 각 주체에게 자율과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지방에 자율성을 주어야 지방정부 간 경쟁이 가능해진다.

넷째, 경쟁의 승자선정 평가가 공정해야 한다. 공정평가의 적 역시 정부개입이다. 정부는 각종 인허가권과 보조금 대상 선정을 통해 기업 평가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공정평가의 또 다른 적은 잘못된 평가기준이다. 교육이 대표적이다. 좋은 대학 가려는 노력이 불필요한 선행학습만 부추길 뿐 학생의 인적자본 강화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방향이 잘못된 노력은 성장에 오히려 마이너스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정당 평가는 '국가발전에 대한 기여'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는 무조건 잘못이라 생각하는 유권자는 '상대 제압을 위한 노력'을 평가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면 정당은 서로 타협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적과 싸우는 과정에 몰두하며 잠재성장률을 잠식한다.

다섯째, 성과에 따라 결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모든 학생에게 A를 준다면 수강생은 많아지겠지만 아무도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공서열이 보수를 결정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자신의 기여만큼 보상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1960~1970년대 우리의 경제발전은 위의 조건을 잘 만족시킨 결과였다. 마을 간 경쟁을 도입하여 동기가 강한 마을에는 보조금을 더 주었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집 한 채 값을 상으로 주었다. 기업이 수출을 더 할수록 은행 이자율을 낮추어 주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에 비해 사회적 약자 보호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성장의 5대 조건을 훼손해선 안 된다. 기회와 자율을 제공한 후 경쟁과 공정평가를 통해 선정된 승자에게 보상을 주는 성장의 조건은 여전히 진리이다.
이 5가지 기준으로 대한민국을 점검할 때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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