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금투세와 채권시장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19 18:05

수정 2024.08.19 18:05

윤경현 증권부장
윤경현 증권부장
"채권시장도 주식시장과 다를 게 없습니다. 내년부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시행되면 추가로 세금을 내면서까지 발을 담그고 있을 이유가 없어요."

국내 한 대형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는 핏대를 세워가며 이렇게 토로했다. "'거대 야당'이 많은 투자자들의 반대를 뒤로한 채 금투세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짜증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금투세가 개인의 채권투자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매매차익(capital gain)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린다는 점이다. 연간 250만원 넘는 매매차익에 대해 22%(최대 27.5%)의 세율로 별도 과세한다. 기존에는 2000만원을 기준으로 이자소득세 및 종합소득세만 부과했다.

예를 들어 액면가 5000만원, 표면이자율 5%인 1년 만기 채권을 4500만원에 매입했다고 치자. 금투세가 없다면 만기 후 이자수익(211만5000원)에 매매차익(500만원)을 더해 711만5000원(세후 기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자소득세 15.4%(38만5000원)가 내야 할 전부다.
하지만 금투세가 도입되면 이자수익은 같지만 (세후) 매매차익이 445만원으로 줄어든다. 원래의 매매차익(500만원)에서 250만원을 공제하고, 나머지 250만원에 대해 22%를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이자수익이 다른 이자수익과 합쳐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소득세를 또 물어야 한다. 결국 피해는 채권투자 열풍에 뛰어든 수많은 개미가 볼 수밖에 없다. "연말에 채권 매도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간은 이자수익에만 과세를 했기 때문에 절세효과가 큰 (표면이자율이 낮은) 저쿠폰채에 대한 개인의 수요가 높았다. 금리인하 기조에서 매매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올해 들어 개인이 증권사를 통해 순매수한 채권금액은 27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9%, 2022년보다는 무려 178% 늘었다. 개인의 원화채권 보유잔고는 54조원 수준으로, 국내 채권시장의 전체 잔고(2120조원)에서 2.5%를 차지하고 있다. 국고채와 통안채가 36%로 제일 비중이 크지만 회사채(29%), 기타금융채(10%), 은행채(6%), 카드채(6%), 공사채(5%) 등 금리 수준이 매력적인 채권도 선호하고 있다. '금투세 폐지=부자 감세'라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의 수급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일정 부분 수요를 받쳐주던 개인의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올해 비우량 신용등급을 가진 기업들이 잇따라 공모 회사채 시장에 도전한 바 있다. '채권 개미'들의 힘을 믿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덕분이다. 효성화학은 지난 4월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들로부터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미매각된 채권을 총액인수한 주관사는 이를 개인들에게 셀다운(재판매)해 물량을 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건설도 지난달 26일 회사채(1500억원 규모)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670억원어치가 미매각으로 남았으나 수차례 청약 끝에 개인에게 모두 팔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금투세 찬성론자들의 말이 한편으로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이와 다르다. (전체 투자자의 1%에 불과한) 일부 자산가에 매기려던 세금 때문에 수백만명의 선량한 개미를 시장에서 내쫓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칫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과세당위론에 집착한 나머지 더 큰 과오를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직 금투세 도입 추진에 따른 우려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면' 더 많은 손실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이제라도 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이고, 더 많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꿔야 할 때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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