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10개 첨단기술 중 미국은 양자컴퓨터에서만 세계 1위로 평가됐던 반면 중국은 인공지능(AI), 재생의료, 자율주행, 블록체인, 사이버보안, 가상현실, 드론, 도전성고분자, 리튬전지 등 9개에서 1위로 평가됐다. 2023년 3월 호주 전략정책연구소의 주요국 과학기술평가에 따르면 44개 기술 분야 중 중국은 37개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평가됐다.
중국의 약진은 SCI 논문 수에서 확인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은 SCI 논문 49만1960편을 발표해 전 세계 논문의 24.37%를 차지했으나 미국은 48만4819편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준다. 논문의 질을 나타내는 피인용 횟수도 중국이 세계 1위 미국을 제친다. 2019년 SCI 논문 기준 중국은 115만3128회이고, 미국은 103만2592회에 그친다. 2021년엔 격차가 더 벌어지는 등 이후 중국은 SCI 논문 양과 질 양 측면에서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최상위 논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STEP)에 따르면 2018~2020년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최상위 1% 중 중국은 연평균 4744편 27.2%로 미국 24.9%를 제쳤다.
중국의 약진은 1인당 소득 1만5000달러의 중국 발전단계, 14억명 인구로 인한 막대한 양의 시험·실습과 데이터, 450만명에 달하는 연구인력 등 풍부한 기술인프라에 기인한다. 한편 수월성 위주의 과학기술정책과 첨단산업에 대한 유연한 규제도 중요하다. 중국은 첨단기술 혁신과 관련된다면 규제도 포기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서울 크기의 20개 도시를 자율주행 시범지역으로 지정해 그 지역에선 도로 유형과 무관하게 기술테스트를 허용하고 있다. 이로 인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 축적은 다시 기술혁신을 촉진한다.
문제는 우리에 대한 영향이다. 이미 철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극복 방법은 기술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R&D 규모 확대는 양국 규모 감안 시 역부족이다. R&D 수월성 확보가 중요하나 이번엔 우리의 R&D 체제가 문제다. 지표상 우리의 양적 R&D 역량은 세계 수준이다. 2020년 기준 연구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위, 인구 대비 연구원 수는 1위이고 GDP 대비 R&D 투자액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문제는 우리 R&D 투자 중 79%를 차지하는 기업 부문 R&D가 비효율적이란 점이다.
탁월한 역량의 인재들을 보유한 대기업의 R&D 투자가 외국 대비 저조하다. 기업 R&D가 상당 부분 정부 매칭 방법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정부 R&D 자원은 출연연과 중소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대기업 R&D 투자는 위축된다. 우수한 R&D 인재들이 낭비되는 것이다. 2021년 현재 세계 상위 2500대에 속하는 우리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중은 평균 3.5%로 미국 7.8%, 독일 4.9%, 중국 3.6%에 미치지 못한다. 중소기업 대비 대기업 역차별적 R&D 지원은 대기업 R&D를 위축시키면서 국가 차원의 R&D 수월성을 위협한다. 이는 우리 대기업들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 역차별적 R&D 지원, 연구원들의 연구활동 최적화를 감안해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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