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이후부터 17개 전기차 브랜드가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주다. 뱅앤올룹슨 스피커 장착은 널리 광고하면서도, 전기차 성능·안전과 직결된 배터리 정보에 대해선 "정책상 공개할 수 없다"고 버티던 국내외 전기차 제조사들의 행태에 소비자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누적된 불신감도 한몫한다. 고객 과실로 귀결돼 온 급발진 사고처리에 대한 제조사에 대한 불만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본다. "불이 나든, 급발진 사고가 나든 어차피 고객 과실이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이번 전기차 화재사고 대응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전기차 산업 육성이란 산업적 시각이 있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 권익이다.
전기차 산업은 탈탄소 대응과 미래차 경쟁력 확보라는 두 가지 명제 아래 지난 십여년간 추진돼 왔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까지 전기차 구매 보조와 충전기 보급 사업 등에 투입된 예산은 약 9조원이다. 전기차 3대 강국을 목표로 현대차·기아 등 제조사,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금융지원이 투입됐다. 전기차에 차량 소프트웨어화(SDV)에 자율주행, 생산효율화 등 산업 격변기 자동차 회사들의 전략과 실행과제 역시 복잡해지고 있다. 도전 리스크 역시 크다. 전기차 개발 수준을 스마트폰 개발사에 빗대 이제 '블랙베리폰' '옴니아폰'에 도달했다고 하니 갈 길이 멀다. "도요타가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던 올봄 만난 일본 기자의 말이 떠오른다. 전기차 시대에 늑장 대응한 도요타 등 보수적인 기업들은 국내외 전기차 화재 사건들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관망하고 있으니, 그럴 법한 얘기로 들리긴 한다.
최근 전기차 화재 취재를 하면서 "언론이 전기차 산업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불안감만 조장한다"는 볼멘소리를 들었다. 산업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지점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소비자에게 비밀주의로 군림하려고 했던 태도는 반드시 짚고 지나가야 한다고 본다. 경쟁사가 어떤 배터리를 썼는지, 제조사들끼리는 서로들 뜯어보면서 파악해보지 않는가. 여론의 힘이 아니었으면, 배터리 정보는 지금도 '대외비' 운운하며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시장 없이 산업은 존립할 수 없다. 소비자가 그 어떤 리스크의 종착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주지해 봤으면 한다. 그것도 수천만원대, 억대 고객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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