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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피해자 손배소...2심서 잇따라 '일본기업 배상 책임 인정'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22 14:08

수정 2024.08.22 14:08

1심서 시효만료로 패소했지만 2심서 뒤집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된 시점이 쟁점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앞서 1심에서는 시효 만료로 일본 기업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없는 장애 사유가 해소된 시점'을 공소 시효 내로 보면서 결과를 뒤집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2부(지상목·박평균·고충정 부장판사)는 이미 고인이 된 강제노역 피해자 정모씨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피고는 원고에게 총 1억원을 지급하라"고 이날 판결했다.

정씨는 지난 1940∼1942년 일본 이와테(岩手)현의 제철소로 강제 동원돼 피해를 봤다고 생전에 진술했는데, 유족은 이를 바탕으로 2019년 4월 2억여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같은 법원 민사항소7-1부(김연화·해덕진·김형작 부장판사)도 사망한 강제노역 피해자 민모씨의 유족 5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이날 뒤집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일본제철이 유족들에게 총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민씨는 1942년 2월 일본제철이 운영하는 가마이시 제철소에 강제로 끌려가 약 5개월간 일했다. 민씨의 자녀 등 유족은 1989년에 사망한 민씨를 대신해 2019년 4월 일본제철을 상대로 약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두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각각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만료됐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이 같은 결과가 연이어 뒤바뀌었다.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은 불법행위가 있었던 때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강제노역의 경우 채무 소멸 시효 10년이 훨씬 지난 사건이지만,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던 점이 인정돼 '이 사유가 해소된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소송 청구 권리가 인정된다.

판결이 뒤집힌 것도 장애사유가 해소된 시점에 대한 판단이 갈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강제노역 피해자 4명은 일본제철을 상대로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심 패소 후 2012년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돼 2018년 재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각 1심은 장애 사유 해소 시점을 대법원이 파기환송 했던 2012년으로 보고 유족 측의 청구를 기각했는데, 이날 항소심은 재상고심에서 사건이 확정된 2018년 10월로 인정해, 유족 측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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