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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의 춤과 함께] 선구자의 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22 18:34

수정 2024.08.22 18:39

첫 동양인 무용수 '조지 리'
1951년 뉴욕 무대에 올라
그가 닦은길 우리가 간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이번 여름은 제33회 하계 프랑스 파리올림픽으로 전 세계가 스포츠 정신으로 하나가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올림픽 개막식이 아주 큰 이슈였는데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펼쳐진 개막식은 파격 그 자체였다. 파리 전체를 무대 삼아 매우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방식으로 프랑스의 역사, 예술, 스포츠 이야기를 연출했다. 기존 개막식과 다른 센강이라는 장소에서 펼쳐진 퍼레이드, 예술가와 가수·배우들의 화려한 무대, 특히 발레·캉캉·오페라·뮤지컬 등으로 자유의 정신을 나타내려 했는데 파격이었던 것만큼 논란거리도 많았다.

그러나 나의 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시청 옥상에서 라이브 춤 공연을 보인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최초 흑인 에투알(별이라는 뜻으로 발레단의 가장 높은 등급인 무용수)인 기욤 디옵과 미국 수화 무용의 개척자 청각장애인 댄서 샤힘 산체스의 퍼포먼스였다. 흑인 에투알 무용수, 청각장애인 댄서 등 그들이 올림픽 개막식에서 춤을 췄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것으로 편견 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스포츠로 화합하자는 올림픽의 정신과 부합되는 것이었다.

얼마 전 '텐 타임스 베터(Ten Times Better)'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사를 보았는데 뉴욕시티발레단 최초의 아시안 발레댄서였고, 현재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블랙잭 딜러로 40년간 일하고 있는 88세의 조지 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조지 리는 중국 무용수로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와 1951년 18세 때 신고전주의 발레의 아버지라 말할 수 있는 조지 발란신의 '호두까기인형'에 아시안 댄서로는 최초로 출연했다.
다만 그가 맡을 수 있었던 역할은 호두까기인형의 중국 춤이었다. 그는 매우 훌륭한 기술을 가진 무용수임에도 불구하고 호두까기인형 작품에서 중국 춤을 추고서도 뉴욕시티발레단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키가 작아서였다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상 아시아인이 발레단에 입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브로드웨이 쇼에서 무용수 생활을 하다 동양인 댄서로서 춤 출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에 딜러로 직업을 바꿔 살았다. "내가 클라스에 들어서자 댄서들은 나를 쳐다보며 웬 동양인 남자가 발레 클라스에?"라며 조소했고,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춤을 추자 클라스에 있던 그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가 선구자였으며 혁신이었다는 것이다. 과거 20년 전 한국에서도 발레를 하느냐고 나에게 물어본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 그 시대에 동양인 무용수로 서양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가 중국에서 활동했더라면 열 배나 더 좋은 상황이 많았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현대는 다양한 민족이 춤을 통해 평등하게 서로 교류하고 화합한다. 이번 여름에도 헝가리에서 일본, 우크라이나, 폴란드, 세르비아, 독일, 미국 등 세계 각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배움이라는 같은 목적으로 만나 춤을 배우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했다. 춤을 배움에 있어서 차별이나 편견, 배타적인 태도는 볼 수 없으며 서로 간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며 그것을 인정하고 알아가길 원했다. 거기서 만난 이탈리아에서 40년 이상을 살고 있는 60대 헝가리인 발레 선생님은 한국 드라마와 나도 모르는 한국 가요들을 나에게 알려주었고, 각국에서 온 선생님들과도 한국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나도 몰랐던 것을 배우며 서로의 예술관과 문화에 대해 교류하며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발레를 통해 소통하며 이해하고 소중한 만남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2024년 현재 세계 모든 발레단에는 다양한 인종의 무용수가 있고, 심지어 젠더를 넘어서는 무용수들도 있다. 조지 리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가 최초의 동양인 무용수로 미국 무대에 섰다는 사실은 그가 선구자로서 이루어낸 일이며, 그와 같은 개척자들이 닦아놓은 길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공평한 기회를 누리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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