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전 기재부장관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 출간
외환·금융위기 등 한국경제정책史 담아… 세종서 북콘서트
"환율 주권 놓치면 더 큰 위기 와… 상속세 최고 세율 낮춰야"
외환·금융위기 등 한국경제정책史 담아… 세종서 북콘서트
"환율 주권 놓치면 더 큰 위기 와… 상속세 최고 세율 낮춰야"
최근 정부세종청사 세종컨벤션센터에서 만난 강 전 장관의 한국경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현직 때보다 더했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이라는 저서의 북콘서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강 전 장관은 세월의 흔적이 깃든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열정만큼은 최고였다. 북콘서트장을 찾은 수십명의 기재부 과장들을 압도했다.
강 전 장관의 발언은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경제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논쟁적 이슈인 대내 균형과 대외 균형에 대한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물가는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문제지만, 국제수지는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고)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라고 했다. 물가, 고용 등 대내 균형의 안정은 중요하지만 국가 생존 문제가 대두됐을 땐 경상수지, 환율 등 대외 균형에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어 강 전 장관은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미래상도 추상적이지만 분명히 제시했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아닌, 작지만 영리한 돌고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언급은 공직생활 중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은 강 전 장관이 북콘서트장을 찾은 기재부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고언이었다. 강 전 장관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차관으로 맞닥뜨렸고, 2008년 기재부 장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응했다. 경제관료로서 부가가치세 도입,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제도를 도입했다.
강 전 장관은 '영리한 돌고래'는 기본적으로 환율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고환율 정책'을 강조하면서 물가급등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위기 때마다 욕먹은 남자'라는 별명까지 있지만 신념은 한치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태생적으로 대외 균형이 깨졌을 때, 쉽게 말해 환율 주권을 놓칠 땐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 전 장관은 "미국은 국가재정에 적자가 나면 달러를 찍어내면 되는 국가여서 물가, 고용에 집중하면 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달러를 찍어내는 국가와) 1달러를 벌기 위해 수출을 해야 하는 국가는 정책이 같을 수 없다"며 "수출(무역수지)을 중심에 두고, 환율주권론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또 "물가를 잡으려고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달러를 내다팔면서) 환란을 초래한 90년대 후반 외환위기의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란 입장을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민생지원금 25만원 지급에 대해 "전 국민 지원보다 25만원 감세가 더 낫다"고 했다. 재정 지출은 재정 건전성보다 지출의 적합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해 유가 보조금 24만원을 지급했지만, 연소득 3000만원 이하 근로자와 2000만원 이하 자영업자들에 한정했다. 부자에게 25만원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다.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상속세와 관련, 강 전 장관은 "대영제국이 망한 이유는 70% 고율의 상속세 때문"이라며 "상속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실제로 피상속인이 해당 자산을 양도하면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걷는 형태의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강 전 장관은 1945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경남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공직을 시작해 국세청, 재무부, 관세청, 통상산업부, 주미대사관 등을 두루 거쳤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은 기존에 출간했던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과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두 권을 한데 묶어 정리한 책이다. 재정, 금융, 국제금융,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위기의 반성, 일류국가의 정치경제학 등 7부로 구성돼 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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