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계자 "올바른 가치관" 옹호했지만
시대착오적 성교육 교재 논란 정치권 확산
시대착오적 성교육 교재 논란 정치권 확산
[파이낸셜뉴스] “15세 소녀와 그의 남자친구가 더운 여름날 공부하던 중, 소녀가 재킷을 벗고 남자친구의 어깨에 기댔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6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즈는 평범한 성교육 교재에 실릴 법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러나 홍콩 당국을 인용한 답변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뉴욕 타임즈는 “홍콩 당국은 이 청년에게 혼전 성관계와 기타 ‘친밀한 행동’을 피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라고 조언한다”라고 설명했다.
홍콩 교육 당국이 최근 발간한 중학생 대상 성교육 교재가 시대착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홍콩프리프레스(HKFP)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복수의 홍콩 매체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최근 중학교 1∼3학년 학생을 위한 시민·경제·사회 과목 교과에 성교육 관련 내용을 포함했다.
문제는 성교육 내용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성교육 교재에는 임신 결과에 책임질 수 없는 젊은 커플의 경우 혼전 성관계를 피하고, 교제 초기에는 신체접촉(친밀함)에 한계를 정하고 자기 규율과 자제력, 음란물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친밀감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하는 것을 권하고 있기도 하다.
누리꾼들은 “(만든 사람들의)머리가 꽃밭이다” “배드민턴 경기 초대가 ‘넷플릭스 앤 칠'(Netflix and chil·넷플릭스 보면서 쉬자, 성행위를 요구하는 완곡한 표현)’의 홍콩 버전이 돼야 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교육 전문가들 역시 이 교재가 시대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SCMP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이 청소년들의 성적 충동 통제를 강조하는 대신 성적 충동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교재 내용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홍콩 정부 고위 관료들의 반응은 달랐다. 크리스틴 초이 교육부 장관은 TV 인터뷰에서 "이 교재는 12∼14세 중학생을 대상으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며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홍콩 정부 수장인 존 리 행정장관도 "정부가 교육을 통해 사회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라며 초이 장관의 견해에 힘을 실었다.
반면 도린 쿵 입법위원은 SNS에 올린 글에서 "성적 충동이 들 때 젊은이들에게 배드민턴을 치라고 조언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배드민턴을 치기 위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코트를 예약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게리 장 입법위원은 혼전 성관계를 비방하는 듯한 당국의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학생들이 불안과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교육 교재를 둘러싼 논란이 홍콩 정치권으로까지 확산하는 모양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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