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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 수준 떨어져서"...미성년 딥페이크 2000개 뿌려도 집행유예라니

서민지 기자,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28 14:38

수정 2024.08.28 14:38

4년간 딥페이크 1심 판결문 분석
21건중 13건은 실형 면해
딥페이크 성범죄 대부분이 '집행유예'
AI 기술 발달에 따라 낮은 양형 기준 손질 필요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딥페이크(이미지 합성기술)' 범죄가 확산되고 있지만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 대부분이 1심에서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딥페이크 범죄자 중 실형이 나온 사람은 다른 유형의 범죄를 추가로 저지른 경우였다. 딥페이크 영상은 한번 확산되면 지우기 어렵고 다수의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법조계에선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리 목적 아냐"·"영상 수준 낮아"…피해자는 어디에
28일 파이낸셜뉴스가 최근 4년간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유포와 관련해 1심 판결이 내려진 사건(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21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8건으로 확인됐다. 나머지는 집행유예 11건, 벌금형 1건, 소년부 송치 1건이었다.

딥페이크 성범죄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건은 3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피해자를 협박해 강제 추행하거나 불법촬영하는 등 다른 혐의가 함께 적용돼 실형이 선고됐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다. 범행 대상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으로 처벌 수위가 더 높아진다. 성착취물을 시청·소지한 경우 범행 대상이 미성년자일 때만 처벌이 가능하다.

최근 4년간 딥페이크 제작·유포 관련 1심 판결
(건)
형량 사건 수
실형 8
집행유예 11
벌금 1
소년부 송치 1
21

수년간 미성년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러도 법원의 판단은 집행유예였다. A씨의 경우 수년간 미성년 피해자의 얼굴과 타인의 나체 이미지를 합성한 동영상을 만들어 상습적으로 배포했다.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2000개에 이르는 영상을 만들어 텔레그램을 통해 수천회에 걸쳐 공유했다. 그럼에도 A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영상물 합성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인위적으로 합성된 것임을 눈치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영리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할만한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다.

B씨는 1년 6개월여간 딥페이크 영상을 공유방을 만들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판매·배포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는 아동·청소년 여자 연예인이 등장하는 성착취물 100개, 성인 여자 연예인이 등장하는 허위영상물 588개를 만들어 뿌리고 이를 통해 수익까지 얻었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음란한 사진에 대상자들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어서, 제작 과정에서 실제 대상자에 대한 성착취 행위가 수반되지 않았다"며 "아동·청소년 등 대상자를 직접 촬영한 사진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법익 침해의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AI기술 고도화…제도 정비 필요"
합성을 통해 허위 성 착취물을 만든 경우와 직접 불법 촬영물을 촬영한 경우 처벌 수위는 다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살펴봐도 그렇다. 양형 기준은 법관들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으로, 법관이 반드시 양형기준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 이유 없이 위반할 수는 없다.

현재 시행 중인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중 가장 높은 형량을 부과하는 종류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으로 기본 징역 5년~9년 형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카메라를 이용해 피해자를 촬영하는 경우 징역 8개월~2년, 반포하는 경우 징역 1년~2년 6개월이다. 반면 딥페이크 등을 활용한 허위 영상물을 편집, 반포하는 경우에 대한 양형기준은 더 낮은 기본 징역 6개월~1년 6개월이 기준이다.

다시 말해 같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한 영상이라면, 피해 정도가 비슷해도 실제 촬영물보다 비교적 낮은 형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딥페이크 이용 범죄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무법인 숭인의 김영미 변호사는 "실무적으로도 허위 영상물이나 아동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배포한 가해자의 형량과 합성을 통해 비슷한 허위 영상물을 만든 가해자의 형량 차이가 상당하다"며 "AI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형량도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텔레그램 등을 통해 확산하는 딥페이크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이기 전에 규제 수단부터 강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딥페이크를 활용한 범죄의 불법성이 높아지는 만큼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단순 형량을 높이게 되면, 형법의 체계 및 정합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딥페이크 활용 범죄를 규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 마련이 먼저라고 본다"고 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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