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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 톺아보기] 경영학자 문규선이 소개하는 '사마천에게 인생을 묻다'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29 12:03

수정 2024.08.29 12:03

사마천에게 인생을 묻다 / 문규선 / 미다스북스
사마천에게 인생을 묻다 / 문규선 / 미다스북스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이는 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처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知死必勇 非死者難也 處死者難)". 사마천의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사지(死地)에서 칼 한 번 쓰지 않고 담판을 지은 화씨벽의 주인공 인상여의 용기를 사마천은 ‘죽음을 아는 자의 용기(知死必勇)’라고 했다. 약소국의 일개 무명 사신으로서 적국의 군신들로 둘러싸였을 때 인상여의 심정은 이러했을 테다.

목숨을 거는 행위, 자기의 희생은 곧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이어지며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죽음과 함께한다는 인간의 현실을 격려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이를 위한 희생, 소중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 가치 있는 행동임을 상기시킨다. 그의 망설임과 결단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성과 용기에 대한 깊은 고찰을 선사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곧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닿아 있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립, 결핍의 문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개념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저 마지못해 살고 버티지 못해 포기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된다. 과거라고 해서 삶이 충만하지는 않았으리라. 다만,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나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안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사마천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 같다.

사마천은 '채미가(采薇歌)'를 전하면서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하는가? 그들을 과연 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죽음의 의미도 시대의 배경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이런저런 판단 이전에 그 상황과 직면할 용기! 이 용기에서 주어진 상황을 넘어설 힘이 나온다고 사마천은 말한다.

“죽을 자리(死地)에 서라! 그래야 살 방도가 나온다”라는 말은 한신(韓信)이 조나라와의 전투에서 쓴 ‘배수진(背水陣)’이라는 병법에서 등장한다. 죽을 곳에 빠진 뒤에야 살게 할 수 있고, 망할 곳에 있어야 생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물을 등지고 싸우는 것은 최악의 전술이었다. 그런데 한신은 그렇게 ‘달아날 곳이 없어야’ 병사들이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그래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장수들이 모두 비웃은 이 전술로 한신은 3만의 병사로 30만의 적을 이겨버린다.

살아 있으되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남의 뜻에 따라 마지못해 사는 삶은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뜻을 얻은’ 삶, 자기 뜻에 따라 사는 삶은 죽음을 불사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순간이란 온전히 삶에 속할 때도, 죽음 편으로 훌쩍 넘어가 버릴 때도 아니다. 우리가 온전히 살아 있는 순간이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의 한계와 오롯이 직면하는 순간에 생생한 체험, 나의 경계를 넘어 더 큰 생명의 흐름과 접속하는 순간의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마음의 역동성이다.


사마천은 이 도도한 흐름을 ‘역사’라고 보았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르고, 무엇이 좋고 나쁜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기보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선악시비의 분별들에서 벗어나 그것들이 만들어진 상황을 새로운 하나의 질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온전히 내 삶을 살 때, 온 힘을 다해 자신의 한계를 밀고 나갈 때, 그래서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져서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살아갈 때, 이때 비로소 나는 삶에 위계와 서열을 정하는 세상의 지배적 표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문규선 경영학자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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