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딥페이크 성범죄가 놀랍지 않은 사회

강명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01 18:10

수정 2024.09.01 19:41

강명연 사회부
강명연 사회부

"딥페이크 성범죄 뉴스, 놀랍지 않았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만난 여학생은 최근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요즘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라는 게 이 학생의 설명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SNS 사진을 내린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번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한국의 '성별 격차'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점에서였다. 외신은 한국을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라고 지목하면서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 남녀 임금격차 등을 예로 들었다.


얼마 전 수사에서 성별로 차별하는 일도 있었다. 게임 홍보영상 속 논란이 된 집게손가락 그림을 그린 작가로 지목된 여성이 조리돌림을 당한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서울 서초경찰서는 댓글 작성자들이 '단순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후 비판이 제기되자 뒤늦게 사과하며 재수사를 결정했다.

고도화된 기술은 이들의 범행을 가능하게 했다. 얼마 전 유관순 열사의 미소를 살려냈던 딥페이크는 범죄자의 범행 도구로 전락했다. 텔레그램은 온라인에서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옵티콘(원형감옥)을 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성착취물을 유포한 2019년 N번방 사건을 시작으로 기술을 등에 업은 가해자들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경찰을 조롱했다.

범행을 막기 위해 처벌 강화 필요성이 거론된다. 2021년 시행된 'N번방 방지법'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의 의무를 강화했지만 텔레그램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허위영상물 유포 등 형량을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얼마 전 만난 학생을 체념하게 만든 이유는 기술발전과 함께 바뀌지 않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일부 남성 피해 사례도 있지만 '거울치료'식 보복인 경우가 많다. 여성의 피해가 절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잘못된 성별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여성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전공의 사직 문제에 대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범죄를 볼 때마다 이 당연한 명제가 통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유관순 열사의 미소와 개인의 인권 중 어떤 것이 중요한지, 기술발전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 한국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을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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