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외국인근로자 누적 100만명 돌파… 열악한 근로조건 여전히 문제

김현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01 18:19

수정 2024.09.01 18:19

고용허가제 20년 개선과제는
3D업종 많아… 재해위험 더 커
숙련도 높아진 인력 정착 유도
정부, 외국인력 정책 개편 방침
2004년 8월 31일 외국인 고용허가제 실시 후 처음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94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이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31일 외국인 고용허가제 실시 후 처음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94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이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31일. 필리핀 근로자 92명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외국인 근로자는 꾸준히 유입돼 누적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다만 이들의 안전과 인권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문제가 터져나와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 등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해주는 제도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은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는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입국한 E-9 소지 외국인 근로자는 4만7466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2004년 이후 입국한 E-9 근로자는 누적 100만명을 넘어섰다.

도입 첫해 3167명이던 고용허가제 쿼터는 올해는 역대 최대인 16만5000명까지 늘었다. 수치상으로 올해 앞으로 11만여명의 E-9 근로자가 더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2·4분기 말 기준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E-9 외국인 근로자는 26만73명이다. 외국인 전체 취업자의 3분의 1을 넘는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 등의 적용을 받으며 최대 4년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재입국 시 추가로 같은 기간 더 일할 수 있다.

E-9 근로자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임업, 광업과 일부 서비스업 등 업종에서 일할 수 있다. 최근 인력 부족에 따라 음식점 주방보조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달부터는 서울에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일하는 시범사업도 시작한다. 지난해 기준 전체 외국인 취업자 중 E-9, 방문취업비자(H-2) 취업자는 36%를 차지했다.

제조업, 건설업, 농어업 등은 외국인 근로자 없이 굴러가기 힘든 상황이다. 조선업은 지난해 1·4∼3·4분기 투입된 인력의 86%가 외국인력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근로자는 국내 인력이 기피하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우리 산업 발전의 버팀목이 됐지만 근로조건에 따른 사고위험, 인권 등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내국인이 꺼리는 위험한 일자리에 배치되고 언어도 능숙하지 못해 재해위험이 더 크다. 지난해 국내 산재사고 사망자 10명 중 1명 이상(10.5%)은 외국인으로 집계됐다. 전체 취업자 중 외국인 비율은 3.2%다. 외국인 18명이 희생된 지난 6월 아리셀 화재 참사도 이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한 점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고용허가제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사용자가 먼저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최초 3년간 3회, 재고용된 1년10개월간 2회에 한해 허용된다. 다만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면 근로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한국어가 서툴고 사업주와 주종 관계인 외국인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나 인권단체들은 사업장 변경 제한이 기본권 침해라고 지적하며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경영계는 사업장 변경을 자유화하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월 발표한 '2023년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애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용허가제의 가장 시급한 개선과제로 '사업장 변경 횟수 축소 등 불성실한 외국인력에 대한 제재장치 마련'(35.5%)을 1순위로 꼽았다. 사업장 변경을 허용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 힘들게 국내에 데려온 외국인력이 일을 안하고 도망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외국인력 정책을 더 유연하고 체계적으로 개편할 방침이다. 그동안 부처별, 비자별로 분절적으로 운영해왔다면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와 관리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고용부는 숙련근로자가 출국·재입국 절차 없이 10년 이상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하는 '장기근속특례제도' 등을 신설하는 법률 개정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 역시 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외국인력을 한번 쓰고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숙련도가 높아진 인력의 장기근속과 정착을 유도하는 '육성형 정책'으로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수요 동향 예측이 가능하도록 데이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우수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할 수 있는 가족동반, 지역사회 정착 등을 위한 통합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며 "E-9→숙련(E-7-4)→거주(F-2)→영주(F-5) 비자 등 체류자격 연계 지원을 통한 지역 정착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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