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오빠 아직 살아있다/나 아직 살아있어/은빛 정열의 사나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오빠 아직 살아있다’의 가사처럼 가수 남진은 78세의 나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활기찼다. ‘원조 오빠 부대’를 거느렸고, 1970년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 남진은 명실 공히 ‘현역’ 최고령 가수다.
오는 4일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마음은 아직도 젊은데, 벌써 데뷔 60주년이더라”며 “부모님부터 이제는 가족 같은 팬까지 지금까지 인연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금수저로 태어나 슈퍼스타 됐지만 “인생은 파도”
남진은 1945년 해방둥이다. 부친은 전남 목포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언론사 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김문옥 씨다.
아버지의 반대를 딛고 지난 1965년 가수로 데뷔, ‘가슴 아프게’(1967) ‘마음이 고와야지’(1967),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님과 함께’(1972) ‘빈잔’(1982) ‘둥지’(1999)와 장윤정과 부른 ‘당신이 좋아’(2009) 등의 히트곡을 냈다.
한때 5만명의 팬을 거느렸지만 유신정권·신군부 등 정치권 변화에 따라 가수 인생도 부침을 겪었고, 베트남전에 참전해 목숨을 잃을 뻔하는 등 인생의 파고는 제법 컸다. 잘생긴 외모 덕에 1967년부터 근 10년간 7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 배우로 활약했다.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은 금수저 집안의 늦둥이이자 차남으로 태어나 ‘많고 많은 직업 중 풍각쟁이’가 된 남진의 가수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공연 영상뿐 아니라 남진 본인을 비롯해 박일남·쟈니리·백일섭·김창숙 등 동시대를 산 연예인과 설운도·장윤정·송가인 등 후배 가수들의 인터뷰 등이 담겼다.
남진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집에 드나들고, 1950년대 포드 자동차를 타고 등교할 정도로 잘살았다”며 “공부하면 머리가 아파서 연극과 음악 두 가지만 팠다”고 돌이켰다.
특히 팝송 애호가였던 그는 전성기 시절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통했다. 트로트로 인기를 얻었지만 쫄딱 망한 데뷔곡 ‘서울 푸레이보이’(1965)는 팝이었다.
남진은 “이후 발표한 '연애 O번지'는 유신정부가 제목이 퇴폐적이라며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트로트라 부르기 싫었던 ‘울려고 내가 왔나’를 어머니의 권유로 대신 불러 스타덤에 올랐다. 시대가 맞아야 노래도 뜨더라. 인생을 배웠다”고 말했다.
전성기 시절, 베트남전에 참전하며 공백이 있었지만 그 덕에 컴백 시 더 큰 환호를 받았다. 특히 그 사이 데뷔한 영남 대표 가수 나훈아와 남진의 라이벌전은 나훈아 피습 사건 당시 ‘남진이 배후’라는 루머가 돌 정도로 뜨거웠다.
“인생에 여러 고비가 있었다”는 남진은 인생 최대 위기를 묻자 1982년 전라도 출신이라 활동이 어려웠던 사회 분위기와 조용필의 등장과 함께 변한 음악시장의 영향으로 “처가가 있는 미국에서 3년 살다왔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결혼해 애도 있고 나이 35세가 넘으니까 움츠려들더라. 우울했다. 똥폼만 잡고 살았는데 인기란 게 그렇게 가는구나. 거기서 또 인생을 배웠다”고 부연했다.
은퇴 “노래 될 때까지..지금은 아냐”
영화 마지막 ‘마지막 무대는 언제가 될까’라는 물음에 남진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오늘은 아니야”라고 답했다.
오는 7일 2024 남진 콘서트 ‘음악중심’ 공연을 앞둔 그는 요즘도 매일 밤 ‘깊은 감성을 달라’고 기도 한다.
남진은 “‘가슴 아프게’나 ‘님과 함께’를 듣던 팬들이 지금 7080대가 됐는데, 같은 노래지만 나이 든 지금 더 뜨겁고 깊게 불러야하지 않나”라며 “젊을 때도 음악을 좋아했지만 너무 바빠서 몸 절반쯤만 담갔다면 지금은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에 몸 전체를 푹 담그고 싶다”고 했다.
인생 곡을 묻자 ‘빈잔’과 ‘둥지’(1999)를 꼽았다. 미국서 귀국해 자신감이 바닥일 때 만났던 노래가 바로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이라고 가창했던 것이 ‘빈잔’이다. 홍보 없이 사랑받은 유일한 곡이다.
1999년, ‘너 빈자리 채워 주고 싶어’라고 노래한 ‘둥지’는 35주년 기념 앨범 발매 1주일 전에 우연히 만난 행운의 곡이다.
그는 “슬럼프를 겪은 후 독심을 품고 3년간 12곡을 준비하고 녹음도 다 끝난 상태였다”며 “그런데 한 무명 작곡가가 내가 지방 공연 간 사이 사무실에 카세트테이프를 두고 갔다. 무심코 이 노래를 들고 전율이 와 바로 타이틀곡으로 뽑았다”고 돌이켰다.
앞서 나훈아는 지난 2월 은퇴를 공표했다. 남진은 나훈아에 대해 ‘노래가 잘되는데 왜 떠나는지 모르겠다’며 “난 노래가 되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노래 못한다고 생각하면 섭섭하다. 그래서 건강을 챙긴다”며 더 열심히 살게 해주는 노래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난 영원한 오빠라는 수식어가 좋다. 90대에도 노래한 토니 베넷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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