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국, 독일까지...올해 유럽 포퓰리즘 정당 돌풍
이민과 안보, 불황까지 겹치면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 커져
절반 이상의 유럽인들이 기성 정부 불신
불확실한 상황에서 '통치하는 강력한 인물' 원해
이민과 안보, 불황까지 겹치면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 커져
절반 이상의 유럽인들이 기성 정부 불신
불확실한 상황에서 '통치하는 강력한 인물' 원해
[파이낸셜뉴스]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 올해 선거를 치른 유럽 주요국에서 극단적인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당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이들이 같은 이유로 인기를 끈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지 전문가들은 유럽이 이민, 안보, 물가 등 여러 어려움을 이례적으로 동시에 겪는 상황에서, 절차와 타협을 내세우며 꾸물거리는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가 포퓰리즘으로 기운다고 분석했다.
정부 못 믿어...확신 주는 포퓰리즘에 투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전문가들을 인용해 유럽의 포퓰리즘 돌풍의 원인이 기존 정부에 대한 불신이라고 지적했다. 1일 독일에서는 중부 독일 중부 튀링겐주와 동부 작센주에서는 각각 주의회 선거가 열렸다. 선거 결과 튀링겐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32.8%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기성 우파 정당인 기독민주연합(기민련)은 23.6%로 2위를 지켰지만 3위(15.8%)는 극좌 성향의 신생 정당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에게 돌아갔다. 작센주의 경우 기민련이 1등(31.9%)을 차지했으나 2위와 3위는 각각 30.6%와 11.8%의 득표율을 기록한 AfD와 BSW가 가져갔다.
올해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은 다른 유럽 선진국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지난 6월 30일 총선 1차 투표를 치른 프랑스에서는 극우 계열의 '국민연합(RN)'이 33.15%로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7월 4일 열린 영국 총선에서는 극우로 불리는 '영국개혁당'이 창당 약 6년 만에 득표율 3위로 첫 하원 진출에 성공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포퓰리즘 정당들은 세부적으로 이견이 있지만 좌·우를 가리지 않고 유럽연합(EU)으로 유입되는 이민자 차단, EU 통합 반대, 러시아 옹호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6월 열린 유럽의회 투표의 경우 득표율 4위와 5위 정치그룹 모두 강경 우파 및 극우 성향이었다.
WSJ는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지역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7월 10일 발표한 지난해 10~11월 회원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서 자국 정부를 '매우 혹은 어느 정도' 신뢰한다고 밝힌 응답자 비율은 각각 36%, 34%, 27%였다. OECD 평균은 39%였다. 지난 6월 공개된 독일 베텔스만재단의 여론 조사에서는 18~70세 독일인 가운데 52%가 정부를 믿지 않는다고 밝혔고, 같은달 영국 싱크탱크 국가사회연구소 설문 결과 45%의 영국인이 정부를 불신한다고 전했다. 이는 조사가 시작된 198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유례없이 악재 겹치면서 정부 한계 드러나
독일 여론조사업체 포르자의 만프레드 귈너 대표는 “위기 상황은 정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9.11 테러, 금융위기,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위기 때마다 국민들은 정부를 지지했다. 그러나 현재는 각종 위기가 중첩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발표된 포르자의 설문 결과 독일 유권자의 54%는 어떤 정당도 국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올해 초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이 공개한 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 유권자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약 60%가 정치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도 비슷했다. 귈너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이달 독일 작센주와 튀링겐주의 주의회 선거 기권표가 각각 26%, 56%에 달했다며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최대 규모라고 지적했다.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 이론 교수를 역임했던 저명한 정치·사회학자 헤르프리트 뮌클러는 사회 문제에 대한 비난이 “해결 속도보다 빠르게 쌓이고 있다"면서 현재 유럽 상황이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2010년대 재정 위기를 겨우 벗어난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밀려드는 이민자의 홍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롯된 에너지·안보 위기, 만성적인 경기 침체와 인구 정체 등 다양한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뮌클러는 "각국 정부들이 압도당하면서 실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도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WSJ는 정치·재정적 한계 역시 불신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을 언급하며 과도한 정부 부채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 전역에서 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정부 불신을 키운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WSJ는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절차와 균형을 따지면서 정책 처리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설명했다. 단독 과반 없이 연정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정치 문화도 정부의 추진력을 떨어뜨린다. 성향이 각기 다른 3개 정당의 연립 정부인 독일 내각은 심각한 내부 의견 충돌로 인해 올해 예산안을 간신히 마련했다. WSJ는 포퓰리즘 정당이 인기를 끌면서 의회의 이념 구성이 더욱 복잡해졌다며 그 결과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떨어진다고 내다봤다. 뮌클러는 “정치적 타협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면서 “그로 인해 유권자들이 타협은 하지 않고 통치만 하는 강력한 인물의 등장을 원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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