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전국은 지금 '노인과 바다'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04 18:20

수정 2024.09.04 18:20

김태경 전국부 부장
김태경 전국부 부장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부산시가 전국 11개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2030세대 인구 감소세가 전국에서 가장 빠른 데다 노인 인구 비율이 23%로 광역시 중 유일하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등 인구의 불균형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청년 일자리는 점차 사라지고 그나마 일자리를 지탱하고 있던 사업체들도 타지로 이전하면서 청년층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비단 부산시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광역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또한 젊은층의 이탈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울산은 한때 인구 120만명을 바라보다 2015년 11월 117만4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매년 감소하며 지금까지 7만4134명이 줄어 지난 7월에 110만명 선이 깨졌다. 조선업 불황으로 장기침체기를 겪으면서 근로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울산을 떠나면서 인구감소가 본격화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서울과 수도권은 인구과포화 상태를 맞아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삶의 비용이 치솟으면서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와 경북도는 오는 2026년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 통합을 목표로 행정통합을 추진 중이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을 미연에 막고 '수도권 제2의 도시'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행정통합에 따른 주도권을 놓고 양 기관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결국 논의 100여일 만에 무산됐다. 비슷한 방식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지역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지만 의견수렴 실패와 이해관계 조정 등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행정규모와 주민의 삶의 질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 행정통합으로 비대해진 권력은 필연적으로 도시 위주로 작동하고, 그 열매는 도시민에게 돌아갈 개연성이 한층 높기 때문이다. 도시 이외 지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결정에 따른 제한적 이득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충청권 행정통합 역시 세종과 충북은 논의에서 제외되거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칫 본래 취지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통합보다 더 시급한 건 지역 내부의 자치분권구조다. 자치분권구조를 어떻게 확보하고 설계하느냐에 따라 균형발전이 좌우된다.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균형발전에 관한 레토릭만 강조했지 지역의 자율성과 재정 확보 등 자치와 분권을 위한 움직임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거칠게 말해 균형보다 자치분권이 앞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순서가 역전돼 균형발전을 앞에 놓고 정책을 펼치니 균형발전은커녕 지방의 자율성도 점점 악화하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균형발전의 동력은 자치분권에서 나온다. 그런데 자치분권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균형발전을 선언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제대로 된 결실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균형발전을 위해선 무엇보다 지방의 재정력 확보가 시급하다. 중앙이 좌우하는 현재의 재정체계로는 지역소멸을 막을 수 없다. 지역을 재생시키고 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일자리 못지않게 재정권한의 과감한 이양이 필수적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대 2에서 6대 4로 높이고 지역의 과세 신설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검토만 해왔던 레저세, 지역자원시설세 등 지역 재정 확충을 위한 재원 확보에 지방이 적극적으로 나설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지방을 독립된 자율성의 주체로 인정하고 이에 따르는 행정·재정적 권한을 부여해야 진정한 자치분권시대가 열린다. 자치분권 없는 균형발전은 허울 좋은 환상이다.
수도권으로 스펀지처럼 빨려들어가는 인적·물적 자원의 배분체계를 바로잡지 못하면 전국은 노인과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지방의 자율성은 선거제도 개혁과 주민자치 참여 확대, 지역정당제 도입 등 민주적이고 균형 잡힌 정책과 제도를 도입할 때 살아난다.
자치분권은 중앙집중형이 아닌 탈중앙화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ktit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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