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1일.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에 0대 2로 패한 뒤 전광판에 올라온 메시지였다.
이 경기 직전까지 5승1무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이미 확보한 대한민국 대표팀과 달리 1승4무1패로 일본 대표팀은 탈락 직전에 놓인 상황이었다.
도쿄대첩의 여운이 여전했던 터라 뜨거운 관심이 쏠렸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예상과 달리 무기력하게 패했다. 하지만 이미 조 1위를 확정한 대한민국 대표팀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오히려 당시 경기를 관람했던 한 관중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에 "월드컵 본선에 같이 가자"는 덕담까지 했다. 이러한 여유에 친일 논란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 된다는 한일전에서, 그것도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월드컵 최종예선이었음에도 우리 국민들은 일본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정브리핑에서 2008년 3600억달러(약 482조원)에 달하던 한일 수출 격차는 한일 관계가 정상화 궤도에 오른 2024년 상반기에 32억달러(약 4조원)로 좁혀지는 등 우리나라가 세계 수출 5대 강국의 자리를 바라보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고, K컬처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과 전방위적 산업 선진화로 지표나 체감으로도 대한민국의 위상은 과거와 확실히 달라졌다.
우리가 일본을 쫓아만 가는 현실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일본을 긴장하게 만든 지도 오래됐고, 때로는 그들이 우리를 경외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곧 방한한다. 굳이 퇴임 직전 총리가 윤 대통령과의 마지막 정상회담에 적극 나선 것은 그만큼 개선된 한일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력에 우위를 가질 만큼 우리는 여유를 가질 위치에 올랐다. 여유가 있을 때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무조건적인 반일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10월 일본 국회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한일 간)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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