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리움미술관이 '미궁'으로 변신했다. 여러 개의 통로로 관람객들은 전시의 방향을 쉽게 잃을 수 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전시의 묘미다.
길을 잃은 듯한 순간들 속에서도 관람객들은 각자의 길로 전시 공간을 탐험해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얻고 '미궁'을 빠져나온다.
여러 개의 통로로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주는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전(展)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오는 12월 2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방향성의 상실'과 '고립감'을 반영한 것으로, 관람객이 각자 길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국내 및 아시아에서 주목 받는 신예 작가 26명(팀)의 작품 60점을 선보여 밀레니얼 이후 세대의 감각과 시대상을 살펴본다.
그간 아트스펙트럼은 지난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청년 작가 서베이 전시로 시작해 국내 신진 작가 등용문으로 기능해왔다. 이번 아트스펙트럼은 수상 제도를 폐지해 경쟁 체제를 탈피하고, 비정형적인 전시의 형태를 실험하는 전환을 꾀한다.
전시의 모티프가 되는 공간은 미국 서부 산호세에 위치한 '윈체스터 하우스(Winchester House)'라는 귀신의 집이다. 윈체스터 하우스는 총기 사업으로 부를 일군 윈체스터 가의 부인이 총기로 사망한 이들의 영혼이 자신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설계한 복잡하고 독특한 구조로 알려져 있다.
이를 참조한 전시장 마당, 입구, 복도, 20여개의 독립적인 방으로 구성된다.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각 작가의 실천을 밀도 있게 보여줄 뿐만 아닌, 다양한 의미 체계가 공존하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재고한다. 작가들은 각자의 지역적 맥락과 역사적 유산을 탐구하고 동시대적으로 해석하는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특히 작품들 가운데 김희천 작가의 '메셔(2018)'는 이번 전시명인 '드림 스크린' 취지에 크게 부합한다. 피부 이식 수술 도구에서 제목을 가져온 '메셔'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신체에 들러붙어 그 존재를 감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범위가 확장되면 세계는 전부 스크린이 될 수 있고, 미래에는 화면 속 신체의 이미지가 신체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중국 작가 보 왕의 '아시안 고스트 스토리(2023)'도 이번 전시장의 미로처럼 유령적 존재의 이동 경로를 따라 긴장 상태에 놓인 홍콩 등 냉전 질서로 개편된 동아시아의 경공업, 이주, 디아스포라의 국면을 다룬다.
이밖에 태국 작가 카몬락 숙차이의 '붉은 연꽃'(2023)도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한 여인의 순결이 깨지자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희생시키고, 그녀는 붉은 연꽃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내용의 민간 설화화를 토대로, 믿음의 힘과 사회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반영한다. 즉, 작가는 자신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상상하고, 사진을 찍어 허구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리움미술관 측은 "드림 스크린은 밀레니얼 이후 세대가 인터넷, 게임, 영화 등 '스크린'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경험을 체화하며 물리적인 세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갖게 된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며 "드림 스크린은 허구적지만 보다 깊은 무의식의 영역을 드러내는 '꿈'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중개하는 다종다양한 '스크린'을 합성한 표현의 전시"라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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