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꿈이 OO에 부합하면 병의 원인을 알 수 있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14 06:00

수정 2024.09.14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편저자 및 간행시기 미상 (未詳)인 <명의경험록(名醫經驗錄)>에는 ‘몽협팔쾌(夢恊八卦)’라고 해서 꿈속에서 병의 원인을 찾았다는 치험례가 나온다.
편저자 및 간행시기 미상 (未詳)인 <명의경험록(名醫經驗錄)> 에는 ‘몽협팔쾌(夢恊八卦)’라고 해서 꿈속에서 병의 원인을 찾았다는 치험례가 나온다.


옛날 한 여자아이가 할머니의 상을 당하고 상복으로 갈아입고 난 후부터 할머니 꿈을 꾸었다. 아이는 할머니 꿈을 꾸고 나면 항상 몸을 덜덜 떨고 머리를 감싸 안으면서 아파했다.

아이의 증상은 할머니 꿈을 꾸고 나서 7~8일 동안 지속되다가 그치기도 하고 혹은 3~4일 후에 그치곤 했다. 아이는 한 달에 1~2번씩, 심하면 3~4번씩 발작한 지 어느덧 3년을 넘기고 있었다.

진찰하는 의원들마다 모두들 사수(邪祟)라고 했다.
사수란 일종의 정신분열병을 일컫는 병명이었다. 아이는 여러 의원에게 그동안 먹은 처방이 많게는 100여 첩에 달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아이가 병든 지 3년이 되던 어느 날, 또다시 진료에 나섰던 한 의원이 있었다. 그 의원은 침법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정밀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처방이 도움이 될까 하고 고민했다.

그런데 아이의 아비는 “제 여식이 병든 지 벌써 3년째입니다. 탕약은 써볼 만큼 써 봤습니다. 이제 집안에 가진 돈도 넉넉하지 않으니 약 처방 대신 침치료를 좀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의원은 어쩔 수 없이 아이의 고통이 너무 가련하여 5~6일 정도 침을 놓았는데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의원은 “제 미천한 실력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라면서 침놓기를 그만뒀다.

의원은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한 속상함이 늘 마음 속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의원은 우연히 한 책을 보다가 구석에 ‘몽협팔괘가지병원(夢恊八卦可知病源)’ 8글자를 보았다. 뜻을 보면 ‘꿈은 팔괘에 부합하니 가히 병의 근원을 알 수 있다.’라는 의미였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봤던 8글자가 이상하게도 의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은 ‘몽협팔괘(夢恊八卦)’ 4글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의원은 항상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꿈이 팔괘에 부합한다?’, ‘꿈이 팔괘에 부합한다라?’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러던 중 의원은 어느 날 꿈을 꿨다. 의원은 꿈속에서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다행스럽게 빠져나왔는데 다리가 아픈 꿈을 꾸었다. 의원은 꿈속에서 ‘내가 물에 빠졌으니 물은 수(水)이고 감괘(坎卦)다. 그렇다면 수(水)를 사(瀉)하는 통곡(通谷)혈에 침을 놓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침으로 새끼발가락의 통곡에 침을 놓으려는 순간 잠이 깼다.

꿈에서 깨어난 아침 의원은 머리가 번뜩거렸다. 갑자기 ‘몽협팔괘(夢恊八卦)’라는 의미가 얼음 녹듯 풀렸다.

의원은 ‘그 아이는 할머니 꿈을 꾸면 항상 아팠다. 할머니는 바로 노모(老母)로 순음괘(純陰卦)에 해당한다. 그러니 바로 곤괘(坤卦)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곤(坤)은 토(土)에 속하며 장부 중에는 비위(脾胃)에 속한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의원은 혹시 아이가 비위가 약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했다. 의원은 곧장 그 아이 집에 가 보았다. 때마침 아이의 또다시 병이 발작하여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역질을 했다. 의원은 다시 복진과 진맥을 해보았다. 정말 비위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식욕부진에 소화불량도 겸해서 살이 계속 빠졌다.

의원은 “내가 다시 침치료를 해 보겠습니다.”라고 설득을 했다. 가족들은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침치료를 허락했다.

의원은 가족들과 함께 아이를 일어나 앉도록 부축했다. 그러고 나서 먼저 등에 있는 비수(脾兪)와 위수(胃兪)에 각각 7장씩 뜸을 떴다. 그리고 비경(脾經)의 토혈(土穴)인 태백혈과 위경(胃經)의 토혈인 삼리혈을 보(補)하고, 토(土)를 극(克)하는 목(木)을 사(瀉)하기 위해서 간경(肝經)경의 목혈(木穴)인 대돈혈과 담경(膽經)의 목혈인 임읍혈을 사(瀉)했다. 비위(脾胃)에 해당하는 토(土)의 기운을 보하고 토를 극(克)하는 목(木)의 기운을 깎아 내리는 침법을 구사한 것이다. 그랬더니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면서 머리를 움켜쥐고 있던 아이가 침이 찔리자마자 증상이 사라졌다.

이렇게 침치료를 반복적으로 행하자 아이의 증상은 점차 안정이 되더니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아이의 가족이 “어떻게 치료하신 겁니까?”라고 묻자, 의원은 “꿈이 아이를 살렸습니다.”라고 답했다.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지만 어찌되었든지 감사함을 표했다.

옛날 의원들은 주역(周易)도 함께 공부했다. 그래서 처방이름 중에는 괘가 들어간 처방도 있다. 대표적으로 청리자감탕(淸離滋坎湯)이다. 리(離)는 삼리화(三離火)로 3수이며 화(化)에 속한다. 그리고 감(坎)은 육감수(六坎水)로 6수에 해당하고 수(水)에 속한다. 따라서 청리자감탕이란 심장의 화를 내리고 콩팥의 수를 보충해 준다는 의미다.

비염에 다용하는 여택통기탕(麗澤通氣湯)이란 처방명도 그렇다. 여기서 ‘여택(麗澤)’이란 연접한 두 늪처럼 벗을 만나 함께 공부하니 즐겁다는 뜻을 가진 ‘여택태(麗澤兌) 군자이붕우강습(君子以朋友講習)’에서 따온 말로 주역이 출전이다. 즉. 여택통기탕은 서로 인접해서 도움을 주면서 막힌 기운을 통하게 한다는 의미다.

아이를 치료한 후로 의원은 자신의 치료경험을 의원들에게 들려주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꿈속에서 치료법을 알게 되었다니 그게 가능이나 하단 말이요?”라고 비웃었다. 심지어 돌팔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의원은 어느 날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의원을 만났다. 의원은 친구의원에게 자신의 치료경험을 자세하게 얘기하면서 다른 의원들이 자신을 비웃어서 속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의원은 어릴 적 친구였기에 이 의원의 진솔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친구의원은 두 눈이 반짝이면서 “요즘 내가 김진사댁에서 3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보았는데 온갖 치료가 효과가 없었네. 나는 병의 원인을 도대체 짐작할 수 없었다네. 그런데 그 환자가 꿈속에서 항상 말이 나타난다고 했네.”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이 “맞네. 말이라면 이괘(离卦)에 해당하고 화(火)에 속하네. 그렇다면 혹시 심병을 의심해 보게나?”라고 했다. 말은 12간지 중 오(午)에 해당하는데, 오는 오행에 화(火)에 속했다.

그 친구의원은 곧바로 김진사댁으로 가서 진찰을 했다. 그랬더니 환자는 가슴의 정 중앙부위인 전중혈에 압통이 심했고, 혀는 혓바늘이 돋으면서 붉었다. 평소 진찰을 할 때 놓쳤던 부분이었다. 친구의원은 ‘심화(心火)로구나.’라고 생각하고 손바닥의 소부혈과 손목의 신문혈에 침을 놓았다. 그랬더니 환자는 침만 맞고서도 증상이 좋아졌다. 심화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친구의원은 더불어서 심장의 화를 사하는 사심탕(瀉心湯)을 처방해 주었다.

친구의원은 돌아오는 길에 의원을 찾아와 “몽협팔괘. 꿈이 내가 놓쳤던 부분을 살펴보게 해 주다니 신기하네. 정말 신기하네.”라고 하였다.

사실 이러한 인과관계가 현실적으로 전혀 성립하지 않을지언정,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던 것은 이 의원들이 어떻게든지 환자를 치료해야겠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병을 낫게 할 수 있을까?’ 혹은 ‘병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날마다 고민한 결과였을 것이다.

몽협팔괘(夢恊八卦)는 어떻게 보면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꿈 이야기에까지 귀를 기울인 것이다. 옛날에는 병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절실함에 환자의 꿈 이야기라도 허투루 듣지 않았던 것이다.

* 제목의 ○○은 ‘팔괘(八卦)’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명의경험록> 有一家女兒, 遭其祖母喪, 自其成服后, 夢其祖母, 則必發寒戰頭痛, 或七八日而止, 或三四日而止, 或一月一二巡, 或一月三四巡, 如是而奄過三年. 其間服藥, 多至百餘貼而无效. 余於其時, 略知針灸, 糟粕而未嘗下手於人矣. 㦖其痛狀, 治以邪祟, 行針五六日, 小無分效, 因以停針, 而一段憤惜, 恒在方寸矣. 偶見一處方書, 邊地有八字, 曰夢恊八卦可知病源云云, 則暗合此兒之病, 而莫究其夢八卦四字之義, 而念念在玆矣. 一朝忽然氷解, 其義曰, 屬於老母, 而此兒夢其祖母而必病, 祖母卽老母也, 此非恊於坤卦乎, 坤屬土也, 而臟腑中脾胃屬土, 則此非病源乎. 中心欣然, 卽往病家, 則兒病時起, 方在苦劇, 扶以起坐, 先灸脾胃兪各七壯, 針其經, 補土穴瀉木穴, 則其病應手如失. 其後遇鄭萬學者, 乃俗醫中有名也, 備語此方, 則亦心欣聽之曰, 余於光州金進士家, 有三年之病, 百方無效, 而夢中常見白馬云云, 以此解彼耶, 曰然矣, 离屬火而心小腸亦屬火, 則此非病源乎, 以此推之, 安有不應也. 其人去于金家, 以此治之, 亦卽差. 來路訪余曰, 其方妙哉妙哉. 中古羅州安洞鄭醫驗方. (한 여자 아이가 할머니 상을 당하고 성복후부터 할머니 꿈을 꾸면 덜덜 떨고 머리가 아팠는데 7~8일 후에 그치기도 하고 혹은 3~4일 후에 그치곤 했으며, 한 달에 1~2번에서 3~4번씩 발작한지 어느덧 3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동안 먹은 약이 많게는 100여 첩에 달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나는 그 당시에 침구법을 대강 알았지만 정밀하지 않아서 침을 놓지는 않았다. 그 아이의 고통이 너무 가련하여 사수를 치료하기 위해 5~6일 정도 침을 놓았는데 조금도 효과가 없기에 침 놓기를 멈추었고 한편으로는 고치지 못한 속상함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책을 보다가 구석에 ‘몽협팔괘가지병원’ 8글자를 보았는데 은연중에 그 아이의 병에 맞는 듯하나 ‘몽협팔괘’ 4글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그 의미가 얼음 녹듯 풀렸다. 그 아이의 병은 노모 때문이다. 할머니 꿈을 꿀 때마다 앓는데 그 할머니가 바로 노모였다. 이는 곤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곤은 토에 속하며 장부 중에는 비위가 토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병의 원인이지 않겠는가? 기쁜 마음으로 곧장 그 아이 집에 가니 마침 아이의 병이 발작하여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어나 앉도록 부축한 후 먼저 비수와 위수에 각각 7장씩 뜸을 뜨고 그 경맥에 침을 놓되 토혈은 보하고 목혈은 사했더니 손길이 닿는 대로 증상이 사라졌다. 그 후로 정만학이란 유명한 의원을 만났는데 치료방법을 자세히 얘기했더니 그도 눈을 반짝이며 듣고는 “내가 광주 김진사댁에서 3년 동안 앓고 있는 환자를 보았는데 온갖 치료가 효과가 없고 꿈속에서 만날 백마를 보았다고 합니다. 같은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하니, 내가 “맞습니다. 이괘는 화에 속하며 심과 소장도 화에 속하니 이것이 병의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이 방법을 적용해보면 어찌 반응이 없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그 의원이 김진사댁으로 가서 이 방법으로 치료했더니 즉시 나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를 찾아와 “그 처방 신기합니다.
정말 신기합니다.”라고 하였다.
옛날 나주 안골 정의원의 경험방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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