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확신을 주는 정책, 의심을 부르는 정책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11 18:32

수정 2024.09.11 20:06

김병덕 건설부동산부장
김병덕 건설부동산부장
정부가 향후 6년간 서울과 수도권에 43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8·8 대책이 나온 지 한달이 지났다. 주택공급을 늘려 집값 상승을 억제하고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모색하겠다는 게 이번 대책의 취지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세는 지속됐고, 9월부터 금융권의 전방위 대출 옥죄기가 나오면서부터야 그나마 진정 국면을 찾는 모습이다.

사실 공급대책은 시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신규 택지를 발굴하고 분양을 거쳐 준공 후 입주까지 걸리는 기간을 생각해보면 내 집 마련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게는 '42만7000가구+α'라는 공급 규모보다는 당장의 매물들이 눈앞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규제를 완화해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고, 비아파트 시장에서 대규모 공공 신축 매입에 나서겠다는 방안도 실수요자들이 즉각적으로 생각을 바꿀 정도로 와닿지는 않는다. 대책 발표 이후에도 시장의 과열이 식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번 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한마디로 중장기전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추진 방향부터 '안정적 주택공급을 확신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통해 우량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국민 주거안정을 실현하겠다'는 쪽으로 설정돼 있다. 이제는 서울·수도권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한 시장에 안정적으로 우량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시그널을 던진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서울과 서울 인근지역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담았다.

눈에 띄는 것은 '확신'이라는 단어다. 안정적 공급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인정하고 불안한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후의 수단인 그린벨트 해제 카드까지 꺼낸 것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확신'이라는 단어는 이번 대책의 기대효과에서 다시 한번 나온다.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향후 6년간 수도권에 42만7000가구+α의 우량주택을 공급해 국민에게 안정적 주택공급에 대한 확신을 제공하겠다'고 다시 한번 썼다. 확신의 주체가 실수요자라는 점에서 무리하게 뛰어들지 말고 기다려달라는 의미인 셈이다.

공이 수요자에게 넘어온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책 일관성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 국민에게 기다릴 수 있도록 확신을 심어주겠다는 대책이 나온 지 한 달도 안돼 정부의 움직임은 벌써부터 실망감을 자아내고 있다. 8월부터 시작된 금융당국의 서슬 퍼런 대출 옥죄기는 부동산 시장을 정조준했고, 실수요자들은 대출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은행의 문제 메시지 한 통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은행 창구에서마저 대출을 해줄 수 있는지 장담을 못하는 혼란이 이어졌다. 상황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지자 급기야 금융당국은 다시 은행 자율에 대출을 맡기겠다며 공을 떠넘겨 버렸다. 이제 정책은 정책이 아니게 돼버린 셈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실수요자들의 심경은 황당함과 허탈함을 넘어섰다. 담보대출 때문에 은행을 전전하다가 가까스로 가능하다는 곳에 서류를 냈지만 하루아침에 막혔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한 수요자의 얘기는 그저 오락가락하는 금융당국의 혼선으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이 공급 확대에서 대출규제로 이어지는 로드맵이었다면 이 부분은 8·8 대책에 담겨 있어야 했다.
어떤 시그널도 없이 실수요자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이고 혼란스러운 규제들은 정부를 믿고 기다려달라는 8·8 대책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부동산 정책은 필연적으로 금융정책과 맞물려 갈 수밖에 없다.
그저 내 집 한 채를 마련하고 싶은 실수요자들이 안심하고 자금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메시지를 주기를 바란다.

cynical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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