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의사가 되고 싶은건 아이들일까[강남시선]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14 14:03

수정 2024.09.14 14:03

의사가 되고 싶은건 아이들일까[강남시선]
의대 수시모집에 7만 명이 넘는 학생이 몰렸다. 작년보다 1만5000명이나 늘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으로 모집 인원이 60% 가까이 늘었는데도 지원자는 그보다 더 크게 늘었다. 숫자만 보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의사인 듯하다.

왜 이렇게 많은 아이가 의사가 되고 싶어 할까.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의사 아이들을 만들겠다는 부모의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아이들 스스로 진정 의사가 되고 싶어서일까.

후자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의대에 가려는 이유를 물어보면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대답이 대다수다. 돈 잘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도 크게 작용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사회적 지위나 권위를 바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동기라고 의사가 돼서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일까. 우리 사회 최고의 인재들이 '의사 되기'에만 매달리는 게 과연 나라의 장래를 위해 좋은 일일까.

의사는 분명 귀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 순 없다.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필요하고, 교사와 예술가도 필요하다. 기업가와 정치인도 있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의사 되기'라는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있다. 7만 명이 지원했지만 '수시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건 고작 3000여 명뿐이다. 나머지 6만7000명의 아이들은 정시라는 최전선에서 다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의사 지상주의'다. 의사라는 직업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매기는 풍조 말이다. 돈과 권력, 지위를 좇는 왜곡된 가치관이 만들어낸 결과다. 어른들의 욕심이 아이들의 꿈을 왜곡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의사가 되는 것만이 성공의 길은 아니라고, 세상엔 다양한 길이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줘야 한다.

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의사 지상주의'를 더 부추길 뿐이다. 의료 체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 의사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고, 지역 간 의료 격차도 해소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의사가 되고 싶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단순히 '안정적인 직업'이나 '돈 잘 버는 직업'을 찾아서라면 다시 한번 고민해보길 바란다. 의사는 고귀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 밤낮없이 환자를 돌보고, 때론 생사를 가르는 순간적인 판단도 해야 한다. 의술 연마를 위해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각오 없이 단순히 세속적인 성공만을 좇아 의사가 된다면 그건 본인에게도, 환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진정 의술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돕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의사가 되려는 첫째 이유가 돼야 한다.

이번 입시에서 의대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어쩌면 그들 중 상당수는 의사가 아닌 다른 길에서 더 빛날 수 있는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의사만 필요한 게 아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할 과학자도,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엔지니어도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돌볼 상담 전문가도,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복지 전문가도 필요하다.
이 모든 길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길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더 넓은 안목으로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며,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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