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추석 민심은 의료 공백 장기화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면서도 정부와 의사가 제대로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갈등만 양산하는 현재의 대화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주를 이뤘다.
경제 분야에서는 물가 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다. 자고 일어나면 물가는 치솟는데 임금 상승 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높아져 가고 있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특검법은 사실상 관심 밖의 일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의료개혁 필요성은 공감
18일 본지가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의 추석 명절 민심을 청취한 결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개혁에는 대부분 공감을 나타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여야의정협의체 출범에 속도를 높이는 상황이지만 정작 의료계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주요 의료 단체들은 △2025년도 의대 증원 재논의 △무리한 정책 추진에 대한 사과 △사직 전공의 수사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2025년도 의대 증권 재논의는 의정갈등의 출발점으로 지목된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강씨는 "과거 정부에서 실패한 의료개혁을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다만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등 구체적 수치가 나온 배경이 명쾌하지 못하고, 정부가 의료개혁을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의문이지만 의료인 파업 등 악화되는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해 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의료공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사가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광주에 거주하는 50대 주부 나씨는 "양쪽 다 조금씩 양보하고 해결했으면 좋겠다"며 "의대 증원은 해야 하지만 굳이 2000명을 고집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어야지 (의사들이) 왜 반발할 수 밖에 없게 했나하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충남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박씨는 "의사 수가 부족해 늘리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의사들이 너무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의사들이 현장에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서로 협상에 제대로 나섰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은 세대별로 뚜렷한 시각 차이를 보여 주목을 끈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연금개혁안은 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2%로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 상태다.
현재는 은퇴를 하고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서울에 거주 중인 70대 조씨는 "지금의 20대와 30대가 연금을 받을 기대가 너무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연금개혁은 해야 한다. 20대와 30대의 목소리를 더 들어서 개혁을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직장인 40대 정씨는 "세대별로 다르게 오른다고 한다지만 결국 부담은 젊은 세대가 짊어지게 되는 구조"라며 "그러나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젊은 세대가 더 힘들어질테니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는 국민연금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강원도에 사는 20대 회사원 정씨는 "누가 국민연금을 믿나. 안 내고 안 받고 싶다"며 "연금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차라리 투자를 해서 노후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자고 일어나면 뛰는 물가
추석 민심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특히 물가는 정부의 소비자 물가 안정세 판단과는 괴리가 있었다. 실제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지수는 114.54(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2.0% 올라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는 "유가와 농산물 상승 폭이 많이 축소되면서 전체 물가 상승 폭이 둔화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30대 회사원 송씨는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 강남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만 마셔도 2만원이 나간다"며 "지금의 근로소득으로 나중에 결혼을 해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부산에 사는 60대 주부 김씨는 "추석을 맞아 장을 보는데 채소값이 너무 올라 깜짝 놀랐다"며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고 금리도 올라 은행에 내는 이자도 높아졌는데 가계소득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팍팍한 살림살이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김건희·채상병 특검법으로 연일 여야가 정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서민들은 "관심이 없다",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정치권에 대한 냉소마저 느껴지는 상황에서 민생을 위한 정치를 당부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20대 김씨는 "정치권이 극성 지지층만 바라보지 말아애 한다"며 "정치에 큰 관심은 없더라도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일한 환경의 30대 강씨도 "여야 모두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서로 내어줄 것은 내어주고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syj@fnnews.com 서영준 정경수 서지윤 최아영 김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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