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인천 청라 소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시작은 전기차였다. CCTV 영상을 보면 주차된 전기차에서 갑자기 연기가 나다가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고 빠르게 인근 차량으로 옮겨붙었다. 화재로 불에 탄 차량이 87대에 이른다.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전기차 포비아(공포증)'에 빠졌다.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이용 금지부터 충전율 제한까지 이야기가 나왔다. 전기차 차주에 대한 '마녀사냥'도 벌어졌다. 전기차 차주들이 잠재적 화재범으로 몰린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괜히 죄인이 된 기분이다' '테러를 당할까 봐 지하주차장을 왔다갔다 한다' 등 전기차 차주의 하소연이 잇따랐다.
전기차 포비아는 과학·통계적으로 볼 때 근거가 없다. 현대차·기아에서는 지난달 29일 참고자료를 내고 현재의 포비아 현상이 지나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배터리 화재의 원인은 배터리 충전량 자체와는 관계없는 셀 자체의 제조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이 대부분이고 과충전에 의해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사례도 전무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청라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고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스프링클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다만 과학적·통계적 '사실'은 포비아를 이미 믿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중고차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은 최대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해외에서는 판매량 증가세가 지속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현상)'에 더 깊이 빠지고 있다.
여기까지 현상을 봤으니 이제 현실을 살펴보자. 기후위기 극복에 핵심 인프라는 전기차다. 전기차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 기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전기차 화재와는 비교할 수 있는 피해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포비아는 전기차 산업 성장을 억누르는 걸림돌 이외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근거가 없는 포비아에 빠질 것이 아니고 화재로부터 안전한 전기차 기술을 개발하고 화재가 발생할 때 확산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포비아에 빠져 있으면 세계에서 나홀로 고립되는 '전기차 갈라파고스'로 우리 사회가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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