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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또 다른 비대칭 : 핵물질 불균형 [fn기고]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20 06:00

수정 2024.09.20 06:00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北 고농축 우라늄 시설 공개, 회색지대→흑백지대로 공세 전환 의미
 -北공식 핵보유국·협상력 극대화·비확산체제 무력화·전쟁준비 과시 포석
 -‘핵금기' 넘어 ‘핵물질 금기’ 놓인 한국, 핵물질 확보 원천 차단 상태
 -남북간 핵물질 불균형→핵억제 약화 이어지는 부작용 심화 초래 우려
 -韓, 현상유지→‘평화’와 ‘전략’ 융합한 핵정책 가동 필요성 검토해야
 -원자력 에너지 사용, 저농축 우라늄 연료조차 수입...핵연료 자강 부재
 -韓 ‘핵물질 자강’은 원전 역량 강화·북핵 억제력 차원서도 일석이조 해법
 -융합형 핵정책 로드맵...한미 원자력협정, 미일 수준 발전부터 시작돼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북한이 극비 전략기지로 규정되는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국제사회에 공개함으로써 사실상 70여년 이상 지속해 온 핵 프로그램의 완성 절차에 돌입했다. 마찬가지로 이를 통해 북한정권에 레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뿐 아니라 2021년 5MW급 원자로도 재가동하면서 플루토늄 재처리를 통한 핵물질 확보에도 나선 상황이다. 이처럼 소규모 시설에서 은밀히 확보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과 대규모 시설이 필요한 플루토늄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핵물질 최대 확보에 나선 것은 핵무장을 이미 완료한 북한이 회색지대에서 흑백지대로 전략적 전환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핵물질 확보 극대화를 통해 북한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첫째, 공식 핵보유국 등극이다.
단지 ‘핵무장국’을 넘어 ‘공식 핵보유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포석이다. 이는 북한이 핵강국으로 한반도를 넘어 국제정치에 현상변경국으로 행보를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협상력 극대화 포석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핵물실 시설 공개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국 권력 교체기라는 환경을 기회로 활용하여 핵군축을 통해 미국 및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내려는 셈법이 내재되어 있다. 셋째, 비확산체제 무력화를 노리는 차선의 방법이라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으로 인해 이미 고강도 제재에 놓여있는 상태다. 따라서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이러한 제재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여 핵물질 확보 장면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변이된 핵도발에 나섬으로써 규칙기반 질서를 약화시키려는 포석이 있다.

즉, 7차 핵실험은 아니지만 이에 준하는 수준의 고강도 핵도발을 통해서 비확산체제를 철저히 무시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넷째, 전쟁준비 과시차원이다. 김정은의 지시하에 북한군이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핵물질 확보 장면을 공개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시 과거와 달리 핵무기가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핵인질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핵전략의 전면적 전환을 의미한다. 최소 핵무기를 보유하며 외부위협으로부터 안보를 달성하려는 전통적 핵전략이 아닌 최대한의 핵무기로 무장하며 공세성과 사용성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핵물질 최대확보 전략을 시행하고 있는 북한과 달리 한국은 핵물질 확보가 금기시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핵물질 확보가 포함된 핵잠재력 단어 하나만 꺼내도 국내·외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단지 ‘핵금기(Nuclear taboo)’를 넘어 ‘핵물질 금기(Nuclear material taboo)’까지 놓여있는 셈이다. 핵물질은 사실 원자력 에너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에 상업적 차원도 있지만 무기로의 전용을 우려해 한국이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원천 차단된 상태다.

핵물질 불균형은 핵억제 약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이 핵물질 확보량을 더욱 높일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한국이 현상유지 정책만을 고수한다면 이러한 불균형이 더 심화될 수 있다. 따라서 ‘평화’와 ‘전략’을 융합시킨 핵정책을 가동시킬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만 치중하여 핵연료인 저농축 우라늄조차도 수입에 의지해왔다. 즉 핵연료 자강이 부재했던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남북 간 핵물질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핵물질 자강’ 역량 구비를 통해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이루는 기제가 필요하다. ‘핵물질 자강’을 통해 한국의 원전 역량을 한층 강화하고 나아가 승수효과 유도 차원에서 북핵 억제력 차원에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뿐 아니라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핵정책을 진화시키는 융합형 핵정책의 로드맵은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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