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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비웃는 명품공화국… '에·루·샤'는 또 배짱 인상 [불황 속 명암]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22 18:22

수정 2024.09.22 18:22

[현장르포] 명품관 오픈런 행진
모바일 웨이팅 시스템 도입하자
휴대폰 번호 입력 하려고 '긴 줄'
엔데믹 외국인 고객 회복세 한몫
"'n차 인상'이 되레 수요 자극"
명품업계 제품 가격 수시로 올려
평일인 지난 2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서 고객들이 입장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정화 기자
평일인 지난 2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서 고객들이 입장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정화 기자
지난 20일 오전 10시20분께 서울 강남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2층 명품관 앞.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각종 명품 매장이 모여있는 이곳의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 현상이 연출됐다. 기다리던 고객들은 오전 10시30분 정각 백화점 직원이 차단봉을 치우기 무섭게 까르띠에, 반클리프 등 여러 매장으로 흩어졌다. 매장 오픈 2분 만에 에르메스 매장 앞에는 10여명이 줄을 섰다.

매장 관계자는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는 모바일 웨이팅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대기시스템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기 위한 또 다른 '웨이팅'도 생겼다"고 전했다.

갈 곳 없는 뭉칫돈이 쏠리며 명품 소비가 절정을 이뤘던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매장 앞 혼잡도는 줄었지만, 아침부터 명품 쇼핑을 위해 나선 사람들로 북적이는 백화점 명품관은 여전한 명품 인기를 실감케 했다.


■모바일 웨이팅 도입에도 '오픈런'

22일 백화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이 고공행진을 하는 건 경기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내국인 수요와 엔데믹 이후 외국인 고객 회복세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가 끝난 후 해외여행 등으로 지출이 분산되며 명품 신장세가 다소 둔화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수요는 꾸준하다"며 "특히 엔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의 명품 수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전 찾은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1층과 지하 1층에 있는 샤넬 매장도 사람들로 북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의류와 주얼리 등이 진열된 지하 1층 매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명품 쇼핑을 하러 나온 내·외국인들로 붐볐다. 이들은 반지를 직접 착용해 보고 귀걸이를 귀에 대보는 등 쇼핑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소비력은 한국인의 명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깊이 깔려 있다는 게 통설이다. 컨설팅업체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22%만이 명품 사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일본(45%), 중국(38%)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은 한번 사면 오랫동안 쓸 수 있다'는 높은 브랜드 가치와 함께 명품 소비 자체를 일종의 자기표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해져 불경기 속에서도 명품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블런 효과에 에·루·샤 'n차 인상'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는 올해도 한국 명품시장에서 통하고 있다.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연초나 연말 등 정례화된 인상 방식 대신 제품군별 가격을 수시로 올리는 'n차 인상'을 고집하고 있다. 샤넬은 올해 1월, 2월, 3월, 8월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주얼리와 시계, 향수 등 뷰티제품과 인기 가방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루이비통도 지난 2월에 이어 5개월 만인 지난 7월 캐리올 PM 모노그램과 네오노에BB 모노그램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4~6%가량 올렸다. 에르메스 역시 올해 1월 로얄 로퍼와 오란 등 일부 신발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가든파티 백 가격을 상향했다. 구찌도 같은 달 오피디아 미디엄 GG 토트백 등 일부 가방 제품 가격을 5~8% 인상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내세우는 주요 가격 인상 이유는 원자재 가격 인상과 환율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독특한 명품 사랑 현상을 가격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는 시선도 팽배하다.

특히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하이엔드급은 브랜드의 상징성에다 경기 영향을 사실상 받지 않는 부유층이라는 점도 가격인상 요인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이 갖고 싶어 하지만 갖기 어려운 제품을 탐내는 경향 때문에 오히려 'n차 인상' 방식이 명품 수요를 더욱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더 올리면 올렸지 떨어뜨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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