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명절이 스트레스인 시대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22 19:36

수정 2024.09.22 19:36

유선준 문화스포츠부
유선준 문화스포츠부
"산 사람도 살아가기 힘든데, 도대체 왜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경 써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죽은 조상 모시려고 모이다가 가족, 친척끼리 분란만 일어나 불편합니다."

최근 가족·친척과 함께 추석 명절을 보내고 일상에 복귀했다. 해마다 지내는 추석이나 설 등은 고대부터 이어진 민족 대명절이라는 명분하에 타의든 자의든 의무적으로 보내야 했다.

추석의 본래 의미는 곡식이나 과일들이 모두 익지 않은 가을에 미리 곡식을 걷어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데서 비롯됐다. 즉 여름 농사일은 이미 끝났고, 가을 추수라는 큰일을 앞두고 날씨도 적절하니 성묘도 하고 놀면서 즐기는 명절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소가족화와 산업화가 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고유의 명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만대의 차량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귀경길 정체를 겪어야 하며, 수십장의 전을 부쳐 제사를 지내야 하는 중노동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매년 명절이 시작되면 레퍼토리는 똑같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하대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도맡거나 제사 음식을 장만해야 해 여성들의 불만이 터져나온다는 얘기다.

반면 남성들도 할 말이 있다. "피곤해도 10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지 않느냐" "1년에 시댁에 몇 번 간다고 부담스러워하냐" 등 항변해 싸움의 불씨가 댕겨진다.

심지어 최근 들어선 확대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가속화된 소가족화가 맞물려 남편이 처가에서 눈치 보고, 명절 일을 전담하는 '처월드'까지 등장해 명절증후군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실정이다.

이쯤 되니 일부 시민단체에선 명절을 폐지해 역사로만 보존하고, 다른 이름의 국가공휴일로 지정해 제사의 부담 등 가족 분란을 막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농경시대도 아니고, 소가족화가 된 시점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문화를 답습하는 게 국민의 고통이라면 있을 법한 주장인 셈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법과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수천년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정부는 국민감정이 이렇듯 진심이라면 융통성 있게 명절을 보낼 대책이나 명절 명칭 변경 등을 고려해야 할 때다.

rsunj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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