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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응급실 정상화, 지금 해야 하는 이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23 18:29

수정 2024.09.23 18:37

정명진 문화스포츠부장
정명진 문화스포츠부장
지난 2022년 주말, 서울 강남의 한 마트에서 80대 중반 남성이 쓰러졌다. 원인은 뇌출혈. 119를 불러 가까운 응급실로 가려 했지만 받아줄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이 없었다. 강남에는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이 모여있다. 하지만 응급실 베드가 다 차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119를 타고 1시간30분가량을 더 돌았을 때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더 큰일이 발생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는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의 부친이 겪은 일이다. 박 이사장은 "의사면서 병원장인데 인맥을 다 동원해도 강남에서 아버지가 내원할 응급실을 찾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올해 의대 증원 문제로 전공의들이 사퇴하면서 응급실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병원이 가장 많다는 서울에서조차 응급환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에 의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1차, 2차, 3차 병원으로 구분돼 있다. 1차 병원은 경증환자, 2차 병원은 중등증환자, 3차 병원은 중증·응급질환의 진료 기능을 담당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1차 병원에서 진료 의뢰서를 받아 3차 병원에 간다. 3차 병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종별 가산이 적용돼 높은 수가를 받는다. 이 금액은 인력과 시설에 투자돼 의료기관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는다. 3차 병원이 시설도 좋고 치료를 잘 한다고 하니 경증환자는 물론 2차 병원에서 봐야 할 중등증 환자들도 몰리게 된다. 이 때문에 필수·지역의료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또 2차 병원은 3차 병원과 경쟁이 안 되니 돈이 안 되는 응급실 운영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경증환자도 새벽에 3차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된다. 문제는 응급실에 빈자리가 없으면 정작 응급실을 이용해야 할 뇌출혈 환자나 심장마비 환자 등 중증환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된다.

우리나라는 응급실 내원환자의 중증도를 5등급으로 나눈 케이타스(KTAS)를 두고 있다. 1~2등급은 중증응급환자, 3등급은 중증응급의심환자, 4~5등급은 경증응급환자 및 비응급환자로 구분한다.

1~2등급은 생명이나 사지에 위험이 있어 빠른 처치가 필요한 상황으로 심정지, 중증외상, 호흡곤란, 극심한 흉통 등이 해당한다. 3등급은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태로 약한 호흡부전, 중등도 복통, 두통, 혈성 설사 등이다. 경증환자인 4등급은 1~2시간 안에 치료 혹은 재평가를 하면 되는 상태로 심하지 않은 배뇨통, 발열을 동반한 복통, 두드러기 등이다. 비응급환자인 5등급은 급성기이지만 긴급하지는 않은 상황으로 탈수 증상 없는 설사, 심하지 않은 물린 상처, 발목 염좌 등 근육 통증 등이다. 이들이 모두 3차 병원에 몰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손보험 확대도 응급실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지 않는 의료비인 비급여를 보장한다. 실손보험 보상은 피부과, 안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 일부 진료과에 집중돼 있다. 비급여 진료과와 필수의료과 의사의 소득격차가 벌어지면서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완화시켜야 한다. 3차 병원인 상급종합병원에 중증환자가 많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3차 병원에서 지역 환자와 경증환자를 진료할 때 수가를 낮추고 중증환자를 볼 때 수가를 높이는 방법이 있다. 또 필수분야 인력이 비급여과로 이탈을 부추기는 실손보험의 개혁도 필수다.


응급의료의 문제점은 의대 증원 문제가 불거지지 않아도 언젠가 터질 문제였다. 지금이라도 응급실의 정상화를 위해 응급의료체계를 잡아야 한다.
내년 3월 전공의들이 돌아오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pompo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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