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정체에 화재도 빈발
미래 산업 K전기차 위기
정쟁에 눈먼 정치가 문제
미래 산업 K전기차 위기
정쟁에 눈먼 정치가 문제
성장가도를 질주할 것 같던 전기차가 그러잖아도 주춤거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한 이른바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덫에 걸리면서다. 배터리에 불이 나면 끄기 어렵다는 걸 인식하면서 생긴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전기차 생태계가 총체적 위기인 셈이다.
전기차는 완성차뿐 아니라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그 소재인 양·음극재, 동박, 배터리셀을 포괄하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 기업들이 지난해 국내외 시장에서 약 119조20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이런 K전기차 생태계가 '캐즘·포비아' 이중고로 내수부터 무너진다면 어디 보통 문제인가. 결국엔 글로벌 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고, 우리의 미래 먹거리 산업에 엄청난 적신호다.
정부도 전기차 포비아의 심각성을 모르진 않는다. 배터리 충전량을 줄이고, 지상주차장에서 충전을 권장하는 등 몇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중 전남지역 일부 여객선사들은 전기차 선적 시 충전율 50% 이하로 제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미봉책이다. 배터리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사실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세계적으로 해묵은 골칫거리다. 최근 수년간 화재가 잦았던 에너지저장장치(ESS)도 마찬가지다. ESS는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햇빛이나 바람이 없을 때를 대비해 저장하는 장치다. 배터리든 ESS든, 거칠게 비유하면 전기를 꾹꾹 눌러 저장하는데 고열이 생기지 않을 리 있겠나. 공히 열역학 법칙이란 물리학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기술적 문턱에 걸려 휘청거리고 있는 격이다.
그럼에도 전기차가 '미래차'의 유력 대안 중 하나임은 부인키 어렵다. 배터리에 충전할 전기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한다는 걸 전제했을 때다. 그렇다면 과도한 공포심보다 안전한 배터리를 만드는 기술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다. 나아가 전기차의 안전문제 못잖게 중요시해야 할 사안이 안정적 전력공급일 수도 있다.
이는 모두 범국가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다. 기업이 앞장서고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하고, 국회가 입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될 사안들이다. 그래도 현대차는 지난달 말 발 빠르게 120조원 규모의 장단기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중장기적으로 배터리 역량과 수소차 기술을 강화하고, 당면한 전기차 포비아를 감안해 하이브리드를 7개 차종에서 14개 차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망라해서다.
최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민주당)이 자신의 지론인 '전기차 의무화' 카드를 접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난타전을 벌이면서도 '전기차 캐즘'이란 민심에 반응한 것이다. 중국과 유럽도 국가 차원에서 수소차 지원 강화에 나섰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만 경쟁국들의 동향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7건의 탄핵안과 9건의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정쟁에만 올인하면서….
1995년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베이징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설화를 빚었다. 즉 "한국은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으로 정치권의 공적이 됐었다. 이제 그때보다 더 민생에 둔감한 정치판이 5류, 6류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재명 방탄'이니 '한·윤 갈등'이니 하며 권력투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듯한 작금의 여의도 풍경을 보라.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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