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의 순기능은 분명 있다. 단기간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고 경영을 개선시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자본시장법은 '사모집합투자기구'라는 법률상 자격을 부여하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를 가하고 있다. 공개매수 제도 역시 개인투자자에게도 기관투자자와 동등하게 주식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투자자 보호의 순기능이 있다. 1990년대 후반 법제화되어 짧지 않은 역사를 지녔다.
법으로 인정받은 기구가 법 테두리 내에서 활약하는 것을 갖고 약탈이니 매국이니 비난하는 것은 세계 10위권의 개방된 경제대국 대한민국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다. 고려아연도 우호지분을 확보하겠다며 일본계 소프트뱅크에 손을 벌렸다는데 그렇다고 시가 총액 10조원짜리 회사가 쉽게 일본에 팔리겠는가? 둘 다 마타도어일 뿐이다. 고용이 축소될 것이라며 공개매수 반대를 표명한 울산시장도 너무 나갔다. 정치인은 지배주주가 누가 되건 고용을 창출하고 기업 가치를 증대시키도록 감시자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사안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감정과 자기이익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자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호사인 필자는 회사법적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기를 제안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안의 본질은 어느 기업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주인-대리인 딜레마'이다. 경영권 침탈이냐 아니냐가 아니란 말이다.
대리인이 주인보다 자신의 이익을 취할 가능성을 '주인-대리인 딜레마'라 하는데 1970년대이래 경제학의 주요 연구 주제이다.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주주(주인)가 경영자인 이사(대리인)를 견제하는 문제로 나타난다. 상법의 회사법 편에 관련 규정이 있는데 이사의 충실의무·비밀유지의무·경업금지·이사와 회사 간 자기거래 제한·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배구조 논의는 '주인-대리인 딜레마'보다는 소수(소액)주주의 최대주주 견제에 보다 집중되었다. 그래서 집중투표·다중대표소송이나 감사위원회 제도 같은 것이 상법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주식이 점차 분산되면서 최대주주의 지배권은 약화되는 반면 전문성과 정보력을 독점한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KT·포스코·KT&G·금융지주사 같이 특정한 최대주주가 없는 기업들이 그렇다.
고려아연의 경우는 더욱 복잡해 보인다. 영풍과 MBK가 밝힌 공개매수 이유에는 고려아연 경영을 맡고 있는 2대 주주 최씨 가문의 3세인 최윤범 회장의 배임 이슈가 있다. 최 회장이 이사회도 안 거치고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5600억을 투자하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미국 회사에 5800억원을 투자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사익 추구가 의심되는데도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지배구조 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감시하는 게 임무인 사외이사들이 오히려 대주주 영풍 공격에 가세한 것을 보면 일리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주인-대리인 딜레마'의 전형적 사안으로 불 수 있다. 우호지분을 합하면 최씨 가문의 지분이 더 많다는 점에서는 소수주주(영풍)의 최대주주(최씨 가문) 견제 사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최 회장의 지분이 2.2%인 점을 감안하면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한국 재벌의 전통적인 문제점도 들어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70년 전 장씨와 최씨 두 가문의 동업으로 출발했지만 세계 최대 제련소가 된 이상 지배구조 정상화는 더 이상 가문의 사안일 수 없다. 그러나 영풍과 MBK가 공개매수에 착수한 이상 이 문제의 해결은 어디까지나 법률, 즉 자본시장법이 정한 게임의 룰에 맡겨야 한다. 경영이나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냉철한 시각으로 결과를 지켜보자.
이동호 법무법인 온다 기업 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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