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강산 6번 바뀌니 굴뚝 사라지고 스타트업 성지

김현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29 14:22

수정 2024.09.29 19:08

1965년 경공업 위주로 시작 이제 디지털산업이 채워
산단공, 입주기업 정착에 큰 도움
[fn·한국산업단지공단 공동기획]
서울 구로동에 60년 전 공업단지의 상징인 굴뚝 기업이 지식산업센터에 둘러쌓여 있어 상전벽재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서울 구로동에 60년 전 공업단지의 상징인 굴뚝 기업이 지식산업센터에 둘러쌓여 있어 상전벽재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파이낸셜뉴스] 국내 1호 산업단지 구로동 수출산업공업단지가 변신하고 있다. 의류, 가발, 인형 등을 만드는 재봉틀 소리는 오간데 없고 강산이 6번 바뀌면서 고층 지식산업센터가 채우고 있다. 이름도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로 개명됐다.

서울국가산업단지를 40여년간 지켜 온 '오일기업'과 올해 시작한 스타트업 '데이터타운'을 비교하면서 산단 60년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 본다.

오일기업에서 만들고 있는 장수막걸리 페트병.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오일기업에서 만들고 있는 장수막걸리 페트병.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끈끈한 서울산단, 이제 옛말 됐죠"

"예전엔 서울산단에서 근로자 체육대회, 산악회 뿐만 아니라 합동결혼식까지 했는데 요즘은 업체들이 많다 보니 사실상 불가능하죠."
고미경 오일기업 상무는 지난 26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하며 미소를 띄웠다. 공장에서는 막걸리 페트를 만드는 기계가 굉음을 내며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서울장수주식회사 자회사인 오일기업은 페트병만 만드는 전문업체다. 지난 2020년 '장수 생막걸리' 병을 기존 녹색 페트병에서 25년 만에 재활용이 편한 무색 페트병으로 교체했다. 개발 당시 흰색병은 오히려 독이 됐다. 탁주 특성상 침전물 때문에 투명한 병에 건더기가 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자 소비자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면서 매출이 일시 감소하기도 했다. 페트병 개발 비용이 2배 가까이 들기도 했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환경을 먼저 생각했다. 일부 업체들은 아직도 재활용이 힘든 녹색병이나 하얀색 병을 사용하고 있다.

1988년 이곳에 입사한 고 상무는 서울산단에서 청춘을 보낸 산증인이다. 그는 "예전에는 산단에 입주한 업체가 많지 않아 소소한 것까지 협조를 하면서 정도 많이 쌓고 좋은 기억이 많다"며 "수출의 다리가 2차선일 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서울산단은 1990년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술경쟁 심화와 지식기반 경제로 산업구조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정보기술(IT) 등 신사업 육성이 시작된 것이다.

고 상무는 늘어만가는 지식산업센터를 보며 변화를 느끼고 있다. 그는 "현재 산단 3단지에 남아 있는 제조업체는 5개도 채 되지 않는다"며 "지식산업센터로 바뀌다 보니 남아있는 저희에게 새로운 규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했다.

오일기업은 생산라인을 전면 개선할 계획이다. 지금은 납품할 병만 생산하고 있지만 양조장까지 설치해 완제품을 바로 판매처에 납품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고 상무는 한국산업단지공단과 지자체에 주변 교통여건 개선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산단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도로나 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노후화됐고 교통 여건이 열악하다. 특히 오일기업이 위치한 3단지는 우회도로가 없어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고 상무는 "공장에서 막걸리 병을 싣고 나가는데 출퇴근시간에는 2~3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며 "교통여건이 개선되면 배송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태 데이터타운 대표가 채용한 해외유학생 직원들과 새로운 K팝 콘텐츠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임현태 데이터타운 대표가 채용한 해외유학생 직원들과 새로운 K팝 콘텐츠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산단공 지원프로그램, 사업전환 발상에 큰 도움"
서울산단에 오일기업 같은 제조업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하는 스타트업도 즐비하다.

데이터타운은 공단이 지원하는 '킥스업(KICXUP)'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7월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산단 내 현대아울렛 가산점 스타트업 전용 오피스 공간에 자리잡은 데이터타운은 공단으로부터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매칭을 지원받고 있다.

데이터타운의 주요 사업은 K팝 외국인 팬덤의 소통 플랫폼인 팬워크(FanWork)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팬워크는 팬덤의 팀워크를 의미한다.

임현태 데이터타운 대표는 "팬워크앱은 K팝 글로벌 팬덤들이 보다 쉽게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원스톱 서비스"라며 "언어별 K팝 콘텐츠 큐레이션, 안전한 교류를 위한 인증 서비스, 팬덤 이력을 관리하는 팬덤 포트폴리오 기능을 제공해 팬들 간의 소통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팬워크의 주 타겟은 K팝과 K컬쳐에 호감을 가진 외국인 여행객이나 유학생이다. 이들은 팬워크를 통해 한국에서 직접 만나 팬미팅을 가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나라 팬덤의 교류를 통해 아이돌이 해외에 진출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팬 뿐만 아니라 연예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윈윈 구조인 것이다.

임 대표는 "팬워크는 팬과 팬의 교류에서는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팬덤의 창작 활동을 원하는 기업 등 외부 수요와 연결해 '글로벌 성덕(성공한 덕후)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타운은 시작한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사업성을 알아본 공공기관, 기업들로부터 수많은 제안을 받고 있다.

처음부터 사업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할 당시 팬워크가 겨냥한 것은 외국인이 아닌 '한국 팬덤'이었다. 생각보다 저조한 반응에 8월부터 글로벌 팬덤을 주고객으로 설정했다. 이 앱에 글로벌 팬덤이 더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팬워크는 글로벌 팬덤이 제작한 K팝 콘텐츠, K컬쳐 여행 콘텐츠, 팬덤 굿즈 등을 방한 관광객, 대기업, 여행 플랫폼, 공기업 및 지자체에 제공하고 있다.
K컬쳐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아이돌의 생일파티 장소 등을 영어로 제공해 욕구를 해결해주는 식이다. 또 연예인이 즐겨 찾는 카페나 여행지 등 덕지순례(성지순례와 덕후의 합성어) 코스를 짜 여행 플랫폼과 매칭해 제공하기도 한다.


임 대표는 "사업 대상에 대한 생각의 전환에는 공단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탭앤젤파트너스가 큰 도움을 줬다"며 "이런 지원 프로그램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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