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칩에 들어갈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2단으로 쌓은 HBM3E 반도체로 세계 첫 양산이다. 삼성전자도 12단짜리 HBM3E를 올해 안에 양산한다. 내년 생산 HBM 물량까지 수주했다는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4분기 매출이 100% 가까이 성장했다고 지난 26일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다음 분기에도 기록적인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SK하이닉스의 5세대 HBM 양산과 마이크론의 어닝서프라이즈는 'AI 메모리 거품론'을 일축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 반도체의 과잉 투자와 거품 논쟁을 촉발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비관적 보고서가 보기 좋게 빗나간 꼴이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엔 모건스탠리의 행태는 비난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지난 15일 '겨울이 닥친다'는 제목의 부정적 보고서 발표 이틀 전 SK하이닉스 주식을 대량 처분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현재 조사 중인데 불법이 확인되면 엄정하게 조치해야 할 것이다.
AI 반도체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4세대 HBM 양산이 지난해였으니 세대 전환 속도가 1년도 안될 정도로 가속 중인 것이다. 5세대 HBM 중에서도 HBM3E 12단은 8단 제품과 두께는 같지만 용량과 처리속도가 뛰어나다. 미국 엔비디아가 고용량 HBM이 더많이 필요한 차세대 AI 가속기를 대량 양산하는 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5세대 HBM이 없어선 안된다.
HBM은 영업이익률이 50%대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AI반도체 업체가 요구한 사양에 맞춰 주문 제작되는 시스템이어서 품질테스트와 수율이 더 중요하다. SK하이닉스가 차세대 주력으로 HBM 투자와 양산에 속도를 내는 것, 삼성전자가 사력을 다해 엔비디아 품질테스트를 통과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HBM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 중인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8월 기준 반도체 수출은 120억달러에 육박해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담당했다. 이 중 HBM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73억달러로 72%나 늘었다. 우리 기업들의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선제적 투자의 덕이 아닐 수 없다. HBM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자만해선 안된다. 반도체는 영원한 승자가 없다. 반도체 패권을 쥐었던 인텔도 미래 AI칩 시장을 오판하고 투자에 뒤처진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이 우리기업을 압박해 중국에 HBM 수출을 제한하려는 조치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정부는 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 AI반도체 산업에 수십조원을 지원하는 등 각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비전만 화려해선 뭣하겠나. 책상머리 대책이 안되려면 신속하게 주도면밀하게 이행해야 함은 마땅하다. 여야도 이에 필요한 세제 감면, 보조금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개정을 더는 미룰 일이 아니다. 반도체 업황 상승의 호기는 한순간일 수 있다. 주도권을 꽉 쥐고, 나라 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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