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두부를 먹고 체하면 O가 약이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9.28 06:00

수정 2024.09.28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19세기 말에 활동한 김준근(金俊根)이 그린 ‘두부짜기’라는 그림(왼쪽)으로 현재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에 있다. 오른쪽은 <본초강목>에 그려진 내복(萊菔, 무)으로 특히 두부를 먹고 체하면 무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19세기 말에 활동한 김준근(金俊根)이 그린 ‘두부짜기’라는 그림(왼쪽)으로 현재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에 있다. 오른쪽은 <본초강목> 에 그려진 내복(萊菔, 무)으로 특히 두부를 먹고 체하면 무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에 두부를 즐겨 먹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평소에 두부를 좋아해서 생두부를 먹기도 하고, 두부를 기름에 튀겨서 먹기도 했다. 남자는 두부를 밥 대신 먹어서 두부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두부를 과식하고 나서 심하게 체했다. 남자는 그날 이후로 명치끝이 달리며 속이 더부룩하게 창만(脹滿)이 생겨 곧 죽을 것 같았다. 배가 너무 불러 숨쉬기도 힘들었다.

한 의원이 두부중독(豆腐中毒)으로 진단했다. 옛날에는 이처럼 두부를 과식하고 나서 심하게 체하는 경우가 흔했다. 의원은 침치료도 하고 평위산과 같은 소화제를 처방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증상은 약간 가벼워졌지만 여전했다. 시간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아침, 치료를 담당했던 의원이 길을 가다가 어느 집 앞에서 한 부부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남편이 부인에게 큰소리를 지르면 혼내고 있었고, 부인은 쩔쩔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길가 쪽 처마에는 ‘두부(豆腐)’라는 글씨가 내 걸린 것을 보니 두부를 만들어 내다 파는 곳인 것 같았다.

의원은 남편을 말리면서 “나는 길가는 의원이요. 무슨 일인데, 이렇게 큰소리로 부인을 혼내는 것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아니 이 여편네가 아침에 두부를 만들려고 끓이는 콩물에 무언가를 빠뜨린 것 같은데, 도체 그것이 뭔지 말을 하지 않소이다.”라고 답했다.

의원은 “그럼 빠뜨린 것을 그냥 건져 내면 될 일 아니요?”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문제는 지금 건져 낼 것은 보이지 않고, 이후로 두부가 뭉쳐지지 않는단 말이요. 그런데 이 여편네가 무엇을 빠뜨렸는지 도대체 말을 하지 않으니. 나 원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은 눈이 번뜩였다. ‘도대체 무엇을 빠뜨렸기에 두부가 뭉쳐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두부와 상극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하고 궁금했다.

의원은 처음에는 부부싸움을 말릴 요량으로 거들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그것을 알면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사내의 두부중독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원은 부인에게 “부인,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니겠소. 남편에게 혼날 만큼 혼이 난 것 같으니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그래야 나중에라도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을 것 아니요.”라고 설득했다.

남편은 길가는 의원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그냥 ‘오지랖이 넓은가 보다.’라고 여겼다.

부인은 남편의 눈치를 보더니 “내가 오늘 아침에 뭇국을 끓였는데, 실수로 무를 끓인 물을 그만 콩즙을 끓이고 있는 솥에 부어 버렸습니다. 아차, 싶어 무는 다시 꺼냈지만, 그런데 그 후로 이 양반은 두부가 뭉쳐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난리니 낸들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도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그냥 이렇게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부인의 말을 듣고서는 의원은 자신의 무릎을 ‘딱!’하고 치며 ‘두부와 무가 상극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고맙소! 부인.”이라고 했다.

부부는 갑자기 고맙다고 하는 의원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의원은 곧장 약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약방에 도착한 의원은 의서들을 뒤져서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부를 먹고 체하면 무즙이 좋고, 무 삶은 물이나 나복자(蘿葍子, 무씨)도 좋다는 내용들이 있었다. 의원은 약방에 있는 나복자를 챙겨서 환자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서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먼저 이것을 물과 함께 먹이시오.”라고 하면서 무씨를 건네주었다. 이어서 “그리고 생무를 갈아서 무즙을 먹이시오. 만약 동치미가 있으면 동치미 국물도 좋소. 그럼 병자의 증상은 모두 사라질 것이요.”라고 했다.

남자는 무씨와 무즙을 먹더니 체한 증상이 곧바로 사라졌다. 명치가 달리던 증상이 사라지고 시원하게 트림을 하더니 배가 불러 그렇게 답답하던 증상도 없어졌다.

남자와 가족들은 의원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의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부부싸움 때문에 남자를 치료하게 된 것을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했다.

정말 두부를 만드는데, 무가 들어가면 두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두부는 콩 속의 글리시닌과 같은 단백질을 간수로 응고시킨 것이다. 그런데 무의 아밀라아제와 같은 소화효소가 간수 속에 포함된 황산칼슘, 염화칼슘, 염화마그네슘 등의 무기염류 응고제의 작용을 방해할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무 끓인 물을 넣었다면 무의 소화효소의 활성을 이미 잃은 상태다. 혹시 무 끓인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간수가 희석되어 그런 것은 아닐까.

<본초강목>에는 ‘두부를 만드는 곳에서 말하기를 두부를 만드는 탕 속에 무를 넣으면 두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앞선 이야기는 무를 끊인 탕을 넣었기 때문에 아밀라아제의 활성은 사라진 상태지만, 이 구절은 생무를 말하기 때문에 상황은 달라진다. 문헌의 기록이 경험적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두부는 원래 소화가 잘 되는 식품 중 하나다. 콩은 소화흡수력이 60% 정도로 떨어지지만, 된장으로 만들면 85%, 청국장이나 두부로 만들면 90~95% 정도로 소화흡수율이 높아진다. 두부가 소화가 잘되는 이유는 콩즙을 끓이는 과정에서 소화에 장애가 되는 성분들은 줄게 되고, 응고된 단백질 또한 열에 의해서 한번 익혀졌기 때문이다.

두부는 익힌 단백질 덩어리로 소화가 잘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너무 많이 먹거나 혹은 기름에 튀기거나 구우면 딱딱해지면서 소화가 잘 안될 수 있다. 또한 두부는 단백질 이외에도 다양한 영양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두부(간수로 만든 단단한 두부) 100g에는 수분 71.1g 단백질 12.7g, 지방 9.99g, 탄수화물 4.36g, 식이섬유 0.6g 정도가 포함되어 있다(USDA 참고).

무에는 아밀라아제와 같은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풍부하다. 그러나 두부에 포함된 탄수화물은 극히 소량이기 때문에 두부에 대한 무의 소화 정도는 무시할만하다. 혹시 과거에는 떡을 먹고 체하는 경우가 많아서 두부와 함께 떡이나 밥을 함께 먹고 체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두부를 먹고 체한 증상을 하필이면 두부중독(豆腐中毒)이라고 했을까. 이것은 어쩌면 두부를 만드는 간수와 관련된 독성증상일 수도 있었을 수 있다. 옛날에 두부를 만들 때 사용하는 간수는 요즘처럼 정량화되어 있지 않았다. <검요> 등의 기록에 따르면 간수는 독이 있어서 염로독(鹽滷毒, 간수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간수를 직접 마시고 자살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혹시 무가 간수의 독성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최근의 연구결과 두부가 알파-아밀라아제의 활성을 억제해서 탄수화물 소화를 방해하기 때문에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막아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을 보면 두부와 무는 상극관계에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어쨌든 두부를 먹고 체하면 무를 먹어보자. 요즘이야 간수로부터는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두부 속의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데는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튀긴 두부피로 밥을 싸서 만든 유부초밥을 먹고 체했을 때는 여러모로 무가 좋겠다.

* 제목의 ○은 ‘무’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향약집성방> 朱氏集驗方, 治豆腐毒. 人有好食豆腐, 因中其毒, 醫治不効, 醫至中途, 適見做豆腐人家, 夫婦相爭, 因問之. 云 今早做豆腐, 妻誤將蘿蔔湯, 置豆腐鍋中, 令豆腐不成, 蓋豆腐畏蘿蔔也. 醫得其說, 至病家, 凡用湯使率, 以蘿蔔煎湯, 或調或嚥, 病者遂愈. (주씨경험방, 두부독을 치료함. 두부를 잘 먹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독에 중독되어 의사가 치료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의사가 길을 가는 도중에 마침 두부 만드는 집에서 두 부부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물어보니 이르기를 오늘 아침 두부를 만드는데 마누라가 잘못 무 삶은 물을 두부 만드는 솥 속에 넣어서 두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대개 두부는 무를 싫어한다. 의사가 그 말에서 깨닫고 환자의 집에 이르러 가족들로 하여금 물을 끓이게 하여 무를 삶아 요리도 하게 하고 혹 마시게도 하니 환자가 드디어 나았다.)
<본초강목> 按延壽書云, 有人好食豆腐中毒, 醫不能治. 作腐家言萊菔入湯中則腐不成. 遂以萊菔湯下藥而愈. (연수서에서는 어떤 사람이 두부를 좋아해서 먹다가 그 독에 중독되었는데, 의원들이 치료하지 못하였다. 두부를 만드는 곳에서 말하기를 ‘두부를 만드는 탕 속에 무를 넣으면 두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침내 무 달인 물로 약을 복용하자 나았다’라고 하였다.)
<본초정화> 蘿葍. 殺魚腥氣, 治豆腐積. (무우. 생선 비린내를 없애고 두부를 먹고 체한 것을 치료한다.)
<소아의방> 豆腐滯, 蘿葍子煎服. (두부를 먹고 체한 경우는 나복자를 달여 먹인다.)
<광제비급> 豆腐毒, 蘿福汁, 神效. 又飮新汲水, 卽效, 飮酒卽死. 又洗米水飮, 一杯. (두부를 먹어 중독되었을 때는 무즙이 신효하다. 또, 새로 길어온 물을 마시면 곧 효과가 있다. 술을 마시면 죽는다.
또 쌀뜨물 1잔을 마신다.)
<동의보감> 豆腐毒. 中豆腐毒, 令人生瘡, 噫氣, 遺精白濁, 蘿葍煎湯飮之. 又杏仁水硏取汁飮之. (두부에 중독되어 창이 생기고 트림하며 정이 절로 새어 나가 소변이 뿌연 때는 무를 달여 마신다.
또, 행인을 물에 갈아 즙을 마신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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