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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이시바 시대 개막]①아베 내각서도 "韓과 협력 개척" 외쳐…안보는 '매파'

뉴스1

입력 2024.10.01 07:02

수정 2024.10.01 07:02

[편집자주]일본 집권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총재가 1일 102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다. 그는 한일 역사 인식에선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지만 전문적 식견을 갖춘 안보 분야에선 '매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 정책에선 대규모 금융완화를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다. 정치 경력이 38년에 달하는 관록의 정치인(중의원 12선)인 그가 이끄는 일본은 어디로 향할지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구축한 한일관계 개선 흐름이 이어질지를 그의 정치이념과 철학, 안보관 등을 통해 예상해본다.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총재는 한일 역사 인식에선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역사수정주의자로 불렸던 아베 전 총리와 달리 이시바는 아시아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기본으로 하던 과거 일본 총리들과 닮았다.

이시바가 2016년부터 자신의 계파 '수월회(水月会)' 공식 블로그에 올린 칼럼에선 이 같은 인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 정부가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를 이유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을 했을 때 그는 "우리나라(일본)가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저에 있고, 그것이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라 분석했다.

그러면서 "뉘른베르크 재판(극동군사재판)과는 별개로 전쟁 책임을 자기 손으로 밝힌 독일과의 차이는 인식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칼럼에서 방위상 재임 중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과 만나 허를 찔렸던 경험을 풀어놨는데, 당시 "일본의 싱가포르 점령 시대를 알고 있냐"는 질문을 받고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시바는 관련 서적을 소개하며 "과거 역사를 진지하게 배우는 일은 미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6년 11월 칼럼에선 "한국 대통령은 왜 저렇게 정권 후반이 되면 꼭 스캔들이 일어나는지 당최 모르겠다"는 의문을 던지며 "이는 반도국가의 민족성이라고만 할 것도 아닌 듯하다. 이웃 나라 정치 풍토에 대해서도 깊게 고찰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적었다.

신념은 행동으로 표출하는 편이다. 그는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자신은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참배했지만 진짜 뜻을 알게 된 후로는 그만뒀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을 분사하기 전까지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행보는 과연 그가 전임자인 기시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하게 한다. 앞서 기시다는 지난해 5월과 이달 6일 두 차례 사견임을 전제로 "과거 한국인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국가 원수 차원의 발언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제삼자 변제 방안을 발표한 후로 요구해 온 '성의 있는 호응 조치'로 간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시바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집권하던 2017년, 인천에서 개최된 포럼에서 "한일은 '대립 관리'에서 '협력 개척' 관계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단 "영토 문제나 역사 인식에서 양국 입장이 크게 다르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은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주석을 단 점을 감안하면 큰 진전을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안보에는 깐깐한 '이단아' 방위전문가…기시다와 비슷한 듯 다르다

이시바는 방위청 부장관과 장관, 방위상(장관급)을 거친 자타공인 안보 전문가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법의 지배' 등 아베-스가-기시다 정권으로 이어지는 외교 노선은 기본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다소 급진적이거나 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안보 정책도 눈에 띈다.

그가 총재선거 기간 중 던진 키워드 중 하나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였다.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과 유사한 분쟁이 아시아에서도 일어날 위험이 있다는 취지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는 아시아에는 나토처럼 서로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는 집단 방위 체제가 없어 전쟁이 발발하기 쉬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러므로 회원국이 공격받을 때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는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해 중국·러시아·북한 등 '핵 연합'을 억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시바는 "아시아판 나토에서 미국 핵 보유 및 반입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고 했다. 미국이 핵을 사용할 때는 일본이 동맹국 자격으로 의사소통 과정을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어야만 한다고도 했다.

더불어 그는 오키나와현(県) 내 미군기지 부담을 줄이기 위한 미일지위협정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는 2019년 이시바가 칼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일 안보 체제의 비대칭적 쌍무성은 해소돼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고 적은 것과도 연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거나 미군 체재 비용을 대폭 증액하라는 취지로 한 발언에, 이시바는 "국가 주권의 주요 요소인 '영토'를 타국에 제공할 '의무'를 지고 있는 조약"은 미일 지위 협정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과 일본의 지위가 동등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이런 이시바의 태도로 미일 동맹관계가 삐그덕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 정부 관계자가 "동맹 관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경계감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에 "(아·태 지역에서) 집단안전보장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단언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 소속 케네스 와인스타인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이시바는 이단아로, 아베·기시다 정권의 정책과는 또 다른 의미로 차이가 있는 인물임은 틀림없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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