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육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도 후원
[파이낸셜뉴스]
보훈부는 "이들 3인 중남미 지역 독립운동가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상호 단결해 한인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일생을 바쳐 독립운동에 매진했다"며 "1905년 1000여 명의 한인들이 멕시코에 첫발을 내디디며 한국 역사상 최초로 멕시코 이민이 시작됐고, 이들은 미주 한인단체 활동과 민족교육을 통한 조국의 독립에 앞장섰다"고 설명했다.
△임천택 선생은 1903년생으로 모친을 따라 멕시코로 이주했고, 18살이 되던 해 쿠바로 다시 이주했다. 그는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재큐한족연합외교회, 재큐한족단 등 한인단체에서 활동했다. 임 선생은 민성국어학교 교장, 진성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족교육에 종사했다. 또한 광복군 후원금을 모집했고,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민족의식 확산에도 기여했다.
△서병학 선생은 1885년생으로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4년간 노동을 한 후 1921년 쿠바로 이주했다. 이후 메리다지방회, 오학기나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하바나지방회 등 한인단체에서 활동했다. 서 선생은 민성국어학교 교사, 하바나국어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한인들의 정체성과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 노력했다. 이와 함께 대한인국민회, 광복군 후원금 등 꾸준히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박창운 선생은 1889년생으로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4년간 노동을 한 후 1921년 쿠바로 이주했다. 쿠바에서는 메리다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 한인단체에서 활동했다. 박 선생은 해동학교에 재정을 지원하고 민성국어학교 교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독립전쟁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임 선생의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으며, 서병학·박창운 선생의 묘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임천택 선생에게 1997년 애국장을, 서병학 선생에게 2021년 애족장을, 박창운 선생에게 2011년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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