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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들의 구세주', 도로위 핑크라인 이렇게 탄생했다[인터뷰]

김서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01 14:47

수정 2024.10.01 14:47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 한국도로공사 제공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 한국도로공사 제공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 한국도로공사 제공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 한국도로공사 제공

[파이낸셜뉴스] "처음에는 '돌XX' 소리 들을 거 같아 망설였어요. 하지만 아예 '상돌XX'가 되라는 주변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결심을 굳혔죠."
고속도로 등 도로 분기점이나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면 색깔 유도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 그는 '도로 위의 콜롬버스', '길치들의 구세주'로 불린다.

도로에 분홍색과 초록색 등 눈에 확 띄는 색깔 유도선을 따라가면 아무리 복잡한 길도 쉽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어서다. 도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첫 도입 시기인 2011년만 해도 도로에 흰색, 주황색, 빨강색, 파란색 이외 색을 사용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이끌었다.
도입 성과는 그야말로 획기적이다. 교통사고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교통 소통도 원활하게 하는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성과가 입증되면서 처음 도로에 색깔 유도선을 칠하고, 10년 뒤에야 국회 논의를 통해 법 개정이 이뤄졌다. 윤 차장은 지난 5월 '노면 색깔 유도선'을 만든 공로로 국민 추천을 통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그는 현재 아프리카의 섬나라 모리셔스의 한국도로공사 지사에 파견 근무 중이다.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현지 도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윤 차장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노면 색깔 유도선 도입 배경과 과정 등을 들어봤다.

노면 색깔 유도선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했나.
▲지난 2009년 한국도로공사 인천지사에 근무할 당시 경기 화성 동탄에서 교육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영동고속도로 둔대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게 됐다. 일반 국민들도 같은 실수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했지만 뚜렷한 방법이 생각 나지 않았다. 이후 2010년 군포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2011년 3월 안산분기점에서 사망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지사장께서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예방 대책'을 만들 것을 요청했고, 고민 하던 중 8살 딸과 4살 아들이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착안해 도로에 그림을 그려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도선은 왜 분홍색과 초록색인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는 도로에 도색할 수 있는 색상이 정해져 있다. 흰색, 주황색, 빨강색, 파란색 등이다. 이 색들은 모두 갖고 있는 의미와 규제가 있다. 그런데 이런 색을 쓰면 기존에 고정관념화된 규제에 묶여 운전자를 유도하는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고정 관념을 뛰어 넘고 사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제3의 색깔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안산분기점 사고 당시 우회전 승용차(여성 추정)와 좌회전 화물차(남성)를 떠올리며 색깔을 맞춰보기로 했다. 마침 당시 도로공사는 친환경 녹색 고속도로 등을 거론하던 터라 좌회전 초록색(화물차, 남성)으로 결정했다.

나머지 하나의 색깔은 정말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경찰청 협의시 주황색으로 했다. 하지만 딸이 분홍색을 좋아해서, 막연히 분홍색으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분홍색을 칠하면 정말 '돌XX'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그때 시설물유지보수 소장이 아예 '상돌XX'가 되라고 조언해줬다. 거기에 힘을 얻어 분홍색을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사고 당시의 운전자 성별, 진로 방향, 제3의 유도 의미를 띈 색깔이 칠해지고 현재까지도 당시의 컨셉트가 유지되고 있다.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의 효과는 어땠나.
▲당연히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안산 분기점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유도선 도입 전후 교통 사고 통계를 집계한 결과,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도입 후 사고율이 이전에 비해 85% 감소했다. 그마저도 사고가 발생한 시기는 장마철인 7~8월에만 발생했다. 사고율이 확 줄면서 정말 내가 대단한 일을 해낸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아이디어를 정책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사실 법에 칠할 수 없는 색을 도로에 칠해야 하는 만큼 불법이었다. 법에 없는 방법으로 운전자를 유도하다 사망사고라도 유발하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과 배상 문제 등에 직면할게 뻔했다. 하지만 교통사고 감소에 대한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는 확신이 앞으로 나가게 한 원동력이 됐다.

2011년 안산분기점에 처음 설치된 뒤 판교분기점에 이어 다른 도로공사 지사에서도 벤치마킹해 우수죽순 생겼다. 이후 도로공사는 내부 방침으로 유도선을 정당화 했다. 약 10년간 불법 상태였지만 2021년 4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10년 만에 합법화가 이뤄졌다.

색깔 유도선에 대한 호평이 많다. 보람이 클 것 같다.
▲교통 사고 발생도 줄었지만 교통 정체도 크게 감소했다. 분기점, 나들목, 교차로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이른바 '길치'라고 하시는 분들이 두려움을 이겨 내고, 당당하게 도로를 운행하면서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칭찬과 축복이 나의 앞날을 점점 더 밝혀 주는 것 같아 감사드린다.

도로 정책 반영을 위한 또다른 아이디어를 고민 중인 것이 있는지.
▲현재는 비밀이다.
이른바 '백야(white night)'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것도 노면 색깔 유도선 못지 않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 제대로 추진해 보려고 한다.

ssuccu@fnnews.com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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