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 영제(靈帝) 때 시중으로 응소(應邵)라는 신하가 있었다. 시중(侍中)이란 황제의 최측근으로서 황제와 밀접한 거리에서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고 시중드는 직책으로 항상 황제 곁에 머물러야 했다. 요즘으로 치면 국무총리 격이었다.
그런데 응소는 나이가 들어서 입냄새가 심했다. 응소가 입을 열면 인근의 신하들은 자신의 코를 틀어막는 것이다. 궁에서 조례를 할 때면 응소의 입에서 악취가 풍겨 응소 옆에는 신사들이 자리하지 않으려고 피했다.
응소가 황제 앞에서 “아뢰옵니다.~”라면서 말을 시작하면 입에서 변소냄새가 나는 듯했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황제는 고통스러웠다.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시중을 멀리 떨어져 있게 했다. 그렇다고 응소는 시중이란 직책을 맡고 있어서 조언을 듣지 않을 수도 없었고, 응소만 글로써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힘들었다.
황제는 어느 날 의관을 조용히 불렀다. “응소가 구취가 심해서 서로 대화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어떤 방법이 없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관은 “응소를 진찰해 보겠습니다.”라고 하고 물러났다.
의관은 응소를 진찰하고 나서 황제에게 “응소의 구취는 구강의 습열한 사기(邪氣)와 위장의 적열(積熱) 때문이옵니다.”라고 고했다.
그러자 황제는 “그렇다면 어서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의관은 “응소는 나이를 많이 먹어 중기(中氣)가 너무 약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곡물이 식도를 통해서 위장으로 들어가면 관문이 닫혀야 하는데, 곡물이 부숙(腐熟)되면서 관문이 계속 열려있기 때문에 냄새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나이가 많아 약을 써도 한계가 있사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관문은 식도와 위가 연결된 분문(噴門)을 말한다. 응소는 구강의 문제뿐만 아니라 위무력증이 심해서 입냄새가 난다는 설명이다.
황제는 “정녕 방법이 없다는 말이냐? 나는 응소의 건강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응소의 입에서 악취가 진동해서 함께 국정을 논할 수가 없다.”라고 하자, 의관은 “그렇다면 계설향(鷄舌香)을 물고 있게 하오면 됩니다. 계설향은 급하게나마 입 속의 사기를 제거해 줄 것입니다.”라고 했다.
계설향은 바로 정향(丁香)이다. 정향은 정향나무의 말린 꽃봉오리를 말한다. 정향의 말린 꽃봉오리가 구부러진 것이 마치 못[정(丁)]처럼 생겼고 향(香)이 좋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향과 계설향을 굳이 구분한다면 수꽃을 정향이라고 하고. 암꽃을 계설향이라고 한다. 계설향이 향과 기운이 더 강하고 크기도 크지만 계설향이 없으면 정향으로 대체해도 무관하다.
의관이 계설향, 즉 정향을 처방한 것은 바로 정향의 향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향은 음식물을 요리할 때 향신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막힌 기운을 통하게 하고 소화효소 분비를 촉진해서 소화를 돕는다. 그리고 진통효과가 있어서 관절통에도 사용된다.
황제는 응소에게 계설향을 하사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항상 입에 머물고 있도록 하시오. 그리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을 열지를 말 것이오.”라고 명했다.
응소는 굴욕감을 느꼈지만 황제의 명이니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입냄새가 심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 할 말도 없었다.
응소는 하사받은 계설향을 항상 입에 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응소가 “아뢰옵니다.”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면 이제는 입안에서 향기가 났다. 심지어 응소가 입을 다물고 숨을 쉬고 있는데도 숨에서 향기가 나는 듯했다.
응소는 계설향 때문에 지긋지긋한 입냄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입냄새 뿐만 아니라 위장기능도 좋아졌고 눈도 밝아지고 몸의 기운이 산뜻해지면서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계설향이 구취를 제거하는 약이 된 것이다.
옛날에는 몸에서도 악취가 나면 정향(계설향)과 함께 다양한 꽃봉오리를 함께 뭉쳐서 향기 주머니를 만들어 차고 다니기도 했다.
정향이 사용된 향 중에는 유명한 ‘순령십리향(荀令十里香)’이 있다. 순령십리향은 ‘순령의 향이 십리를 퍼진다’는 의미다. 바로 정향(丁香) 반냥, 단단한 단향(檀香), 감송(甘松), 영릉량(零陵香) 각 한냥, 용뇌(龍腦) 약간, 살짝 볶은 회향(茴香) 반냥 정도를 가루로 해서 얇은 종이로 싸서 천주머니에 넣어서 차고 다니는 것이다.
순령(荀令)은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정략가로 조조의 수석 고문이었던 순욱(荀彧)을 일컫는다. 사람들은 보통 순욱을 순령군(荀令君)이라고 불렀다. 순령군은 어느 날 옷에 향을 차고서 한 집안에 머물렀는데, 3일이 지나도 그가 앉은 자리에서 향이 났다고 전해진다.
입냄새는 구강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부 장기의 문제 때문에도 난다. 만약 입냄새가 심하다면 먼저 구강건강에 신경을 쓰고 그럼에도 지속된다면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입냄새는 건강의 문제를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경우 입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정향을 활용해 보고자 한다면 정향을 끓여서 그 물을 작은 스프레이에 넣고 입안에 뿌려주면서 가글을 해줘도 좋다. 정향은 진통효과와 함께 입안의 세균증식을 억제하는 효능도 있어서 잇몸질환이나 풍치에도 도움이 된다.
입냄새에는 박하나 곽향도 좋다. 박하이나 곽향도 구취를 제거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생박하잎이나 생곽향잎을 입에 넣고 씹는 것이다. 말린 것은 차로 마셔도 좋다. 특히 위장이 약해서 입냄새가 나는 경우는 곽향을 차로 마시면 일석이조다.
입냄새는 본인은 잘 몰라도 주변에서는 쉽게 느낀다. 누군가 갑자기 계설향(정향)을 건네줬다면 자신에게 입냄새가 심하게 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냄새는 항상 곁에 두어야 할 시중까지 멀어지게 한다.
* 제목의 ○○○은 ‘계설향(鷄舌香)’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동의보감> 雞舌香. 療口臭. 漢侍中應邵, 年老口臭, 帝賜雞舌香, 含之. 今人於丁香中, 大如棗核者, 呼爲雞舌香, 堅頑枯燥, 了無香氣. 或云, 雞舌香出崑崙交廣, 採百花釀之以成香, 故口含此香, 欲使氣芬芳耳. (계설향, 구취를 치료한다. 한나라의 시중인 응소가 늙어 구취가 나자 황제가 계설향을 주어 입에 머금고 있도록 했다. 지금 사람들은 정향 중에서 대추씨만 한 것을 계설향이라고 부르는데, 단단하면서 말랐고 전혀 향기가 없다. 계설향은 곤륜, 광동, 광서에서 난다. 온갖 꽃을 따서 숙성시켜 향을 만들기 때문에 이 향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도 한다.)
<증류본초> ○ 應邵漢官侍中, 年老口臭, 帝賜雞舌香含之. (한나라 시중인 응소가 노년에 입 냄새가 나자 황제가 계설향을 하사하여 입에 물고 있도록 했다.)
○ 日華子云, 雞舌香治口氣. 所以三省故事郎官日含雞舌香, 欲其奏事對答, 其氣芬芳, 此正謂丁香治口氣, 至今方書爲然. (일화자본초에서는 “계설향은 입 냄새를 치료한다.”라고 하였고, 삼성고사에는 “낭관이 날마다 계설향을 입에 물고 있다가 아뢰고자 할 일이 있어서 대답할 때면 입에서 향기가 났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정향이 입냄새를 치료한다는 의미이고 요즘 방서에서도 그렇게 여겼다.)
<본초강목> 鷄舌香. 入諸香中, 令人身香. (계설향. 여러 가지 향에 넣으면 사람의 몸을 향기롭게 한다.)
<진씨향보(陳氏香譜)> ○ 荀令十里香. 丁香半兩, 強檀香, 甘松, 零陵香 各一兩, 生腦少許, 茴香半錢弱, 右為末, 薄紙貼, 紗囊盛佩之. 其茴香生則不香, 過炒則焦. 氣多則藥, 氣少則不類, 花香須逐旋斟酌添, 使旖旎. (순령십리향. 정향 반냥, 단단한 단향, 감송, 영릉량 각 한냥, 생용뇌 약간, 회향 반냥 정도를 가루로 해서 얇은 종이로 싸서 천주머니에 넣어서 찬다. 회향은 생으로 하면 향이 없고, 너무 많이 볶으면 탄 냄새가 많이 난다. 기가 충분해야 약이 되고 기가 약하면 그렇지 않다. 꽃향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첨가하면 매력적으로 만들어진다.)
○ 荀令君至人家, 坐席三日香. (순령군이 어느 사람의 집에 이르렀는데, 그가 앉은 좌석에서 3일 동안 향이 났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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