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생명체 기원이고
바다가 결정하는 기후에
바다가 준 식량으로 살아
바다가 결정하는 기후에
바다가 준 식량으로 살아
바다 하면 언제, 무엇이 생각나는가? 퇴근 후 싱싱한 생선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 기울이거나 시원한 파도와 백사장을 보면 '아! 바다' 하고 불현듯 생각날 것이다. 나의 바다가 아닌 저 멀리 선원들이나 어민들의 바다이기에 내 일상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바다를 육지의 보조 공간쯤으로 보아 육지의 쓰레기나 폐수를 그냥 버리거나 방류하곤 했다. 또한 해안선 직선화나 육지 확장 명분으로 갯벌을 마구 매립했다. 그럼에도 2021년 유네스코가 우리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아이러니다. 우리 4대 강인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중 하구가 열려 있는 강은 한강이 유일하다. 남북 상황이 아니라면 이미 한강도 꽉 틀어막혔을 터이다. 우리나라의 해안선 길이는 1만5000㎞이다. 육지 면적에 비해 엄청난 길이인데, 이것도 과거에 비해 20% 감소한 것이다. 바로 매립 때문이다. 어릴 적 남한 면적은 10만㎢가 안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현재는 10만㎢가 넘는다. 바로 바다와 갯벌을 매립한 덕(?)에 육지가 대폭 확장되었으니 바다를 희생하고 얻은 성과라면 성과다. 하기야 바다는 다 받아주고 또 다 내어주는 곳이기는 하다.
인류를 생각하는 동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한다. 그러나 바다 시각으로 보면 바다 없는 우리 생활은 가능한가? 인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인간이 출현할 수 있었을까? 바다가 생명체의 기원이고, 바다가 결정하는 기후 속에 바다가 주는 식량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바다 없이 살 수 없는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바다인류 '호모 시피엔스(Homo Seapiens)' 아닐까!
더욱이 바다 없는 우리 일상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 손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는 휴대폰은 전화이자 컴퓨터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와 인터넷 용어가 바다에서 유래하고 있다. 로그인과 로그아웃은 선박의 업무기록인 항해일지(logbook)에서 나왔으며, 다운로드(download)와 업로드(upload)는 물건을 배에다 싣고 내리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고 서핑한다고 하지 않는가! 바다는 인터넷의 어머니이다. 바다 없이는 인터넷도 없다.
우리가 즐기는 커피 역시 바다와 뗄 수가 없다. 모카커피는 커피 원산지인 이디오피아로부터 커피를 수입하던 중동 예멘의 모카(Mocha) 항만에서 나왔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는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1등 항해사의 이름이며, 로고는 그리스 에게해의 바다요정 사이렌(Siren)이다. 또한 해외여행 갈 때 필수품 여권(passport)은 말 그대로 항구 통행허가증이다.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anchor)는 배의 닻에서 나왔다. 닻이 있어 배가 표류하지 않듯이 프로그램의 흐름을 지탱하는 이가 바로 앵커이다. "어! 이것도 바다에서 나왔어!"라고 놀라듯 바다는 우리 일상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바다가 삼면이다. 남북극이 거꾸로 된 세계지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지도이다. 시각을 바꾸어 보면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게 아니라 삼면이 '바다로 완전히 열린' 행복한 나라이다. 195개 유엔 회원국 중 바다가 한 뼘도 없는 내륙국이 45개 국가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시인 고은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바다라는 시각에서 우리 일상을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많은 '그 꽃'들이 보일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바다이다.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시피엔스로 진화(?)할 때이다.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약력 △62세 △한양대 행정학과 학사 △한양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제18대 해양수산부 차관 △제23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대통령 비서실 해양수산비서관 △행정고시 29회 △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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