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1·2심 무죄 뒤집고 파기환송
"범죄 활용된다는 인식까지 필요하지 않아"
"범죄 활용된다는 인식까지 필요하지 않아"
[파이낸셜뉴스] 보이스피싱 범행을 도운 퀵배달원이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급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판결에 따라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퀵배달원인 A씨는 지난해 2월 텔레그램을 통해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제안을 받고 '중계기 관리책' 역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건물에 통신중계기와 공유기를 설치한 뒤 유심을 갈아끼우는 방식 등으로 해외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발신번호를 국내 전화번호로 변작하도록 도왔다. 그는 47개의 휴대전화 번호를 관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1심에 이어 2심은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본인이 설치한 중계기·유심 등을 범죄에 활용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어야 혐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유심을 버리라는 의뢰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어, 체포 당시 51개의 유심이 그대로 압수됐다"며 "의뢰인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라거나 중계기·유심 등이 범죄에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유심을 보관하지 않고 폐기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은 적법한 업무인지를 물었고, 의뢰인으로부터 불법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전자장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 통신중계기의 기능과 유심의 교체 작업이 보이스피싱 범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금지하는 타인통신매개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전기통신사업법은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타인통신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죄의 고의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통신을 연결해 준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된다"며 "그 통신을 범죄에 이용한다는 것까지 인식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조직원과 공모, 유심을 이용해 피해자들과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도록 매개함으로써 고의로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금지하는 타인통신매개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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