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김 연출 인터뷰
"오페라 '탄호이저'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페라 '탄호이저'의 연출을 맡은 요나 김은 탄호이저 공연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한국 관객들에게 이같이 전했다.
파이낸셜뉴스와 국립오페라단이 공동 주최하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가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탄호이저는 지난 1845년 독일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1979년 중앙국립극장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선보였다. 원어로 된 전막 오페라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오페라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은 파리 버전(1861년)과 드레스덴 버전을 섞고 독창적인 무대 설계와 의상 디자인을 가미해 '서울 버전'을 탄생시켰다.
개막을 3주 앞둔 지난 2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요나 김은 "쾌락주의가 지배하는 현시대에도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개인들의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다"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주장하는 양분법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압력을 받으며 결국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탄호이저'는 사랑을 통한 구원을 노래한 작품이다. 금욕주의와 쾌락주의 간의 갈등, 예술가의 고뇌를 세밀하게 담고 있다. 독일에서 내려오는 전설과 중세 독일에 실제로 있었던 노래 경연 대회라는 소재를 결합해 바그너가 작곡은 물론 직접 대본까지 썼다.
13세기 초 기사 탄호이저는 영주의 조카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가 사는 동굴에 찾아간 뒤로 쾌락에 젖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참회와 구원'이라는 서사 아래 펼쳐진다.
공연은 철학적 주제와 서술적인 이야기로 러닝 타임만 180분이 훌쩍 넘는다. 이는 유튜브에서 1분 이하 숏폼 영상을 즐겨보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즐겨보는 대중의 소비 취향을 거스르는 게 아닐까.
요나 김 연출은 "오페라 자체가 우리나라 문화가 아닌 데다 어렵고 낯설다. 그럼에도 요즘 세대의 기호에 맞춰 작품을 기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서사를 소비하지 않는 시대이기에 이러한 낯선 스토리텔링이 도리어 의미가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어 "관객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대는 계속된다. MZ세대에게 이런 경험이 얼마나 놀랍고 새로운 건지 상상해보라"며 "익숙한 틀을 깨면서 사고의 전환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오페라 관객 층은 2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며 '오페라 대중화'에 대한 논의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요나 김 연출은 "오페라 작품이 쉬울 수는 없다"며 "그럼에도 연출에 있어 원작의 난해함을 의도적으로 하향평준화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오페라 대사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자기에게 해당하는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하고 메시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연출가로서 가장 선호하는 관객 유형은 '바그너에 대해 모르고 공연장에 오는 사람'을 꼽았다.
요나 김은 "우연한 계기로 공연장에 온 관객은 마치 준비도 안된 채로 찬물에 뛰어드는 사람과 같다"며 "지식에 앞서 온몸으로 작품을 만나, 스토리를 따라 흡입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연출가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공연을 위해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들이 뭉쳤다. 2016년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을 이끌었던 지휘자 필립 오갱이 다시 한번 한국을 찾는다. 탄호이저 역에는 독일 출신 테너 하이코 뵈르너와 스웨덴 출신 테너 다니엘 프랑크가 함께한다. 또 엘리자베트 역에 레나 쿠츠너와 문수진, 베누스 역에는 쥘리 로바르-장드르와 양송미가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이외에 성악가 톰 에릭 리, 김태현, 최웅조, 하성헌, 유신희, 전병권, 강도호, 이준석, 김현정이 출연한다.
또한 국립오페라단은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와 협업을 맺고 보다 높은 수준의 화질과 사운드로 오페라 '탄호이저'를 온라인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오는 19일 크노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며, 이후 예술의전당 편집·보정 작업을 거쳐 VOD로 제작될 예정이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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