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리얼과 언리얼–방구석 뮤지컬[김덕희의 온스테이지]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14 15:38

수정 2024.10.14 15:38

'방구석 뮤지컬' 포스터. 낭만바리케이트 제공
'방구석 뮤지컬' 포스터. 낭만바리케이트 제공

[파이낸셜뉴스] 올해 대학로에는 '유진과 유진' '홍련' 등 여성만 등장하거나 여성 서사를 중심에 놓으며 흥행에 성공한 창작 뮤지컬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 9월 29일 개막한 '방구석 뮤지컬'도 세 명의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다. 스탠드 업 코미디 뮤지컬을 표방한 이 작품은 개막과 동시에 화제가 되고 있으며,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매진으로 객석을 채워가고 있다. 제작사인 낭만바이케이트는 '유진과 유진'에 이어 새로운 흥행작을 만들어냈다.

변호진 작가와 양지해 작곡가가 만든 '방구석 뮤지컬'은 예술대학을 갓 졸업한 세 명의 친구들이 직접 뮤지컬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커튼 앞에 마이크스탠드가 놓여 있어 세 친구들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으며 연기와 노래를 펼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형식을 활용하고 있다. 예술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지금은 알바를 하면서 오디션을 보러다니는 배우 지망생 ‘지금이’, 연출을 전공했고 지금은 무능력한 연출 밑에서 조연출을 하며 각종 업무에 시달리는 연출 지망생 ‘최지현’ 그리고 작곡을 전공했고 귀향해 가업을 이을 것인지 고민이 많은 늘 우울한 작곡지망생 ‘한솔’. 룸메이트인 세 친구는 누가 더 불행한가를 경쟁하듯 노래하다가 이 집에서 나가 뿔뿔이 헤어지기 전에 함께 뮤지컬을 만들어 ‘창작의 산실’에 도전하기로 한다.

풋풋한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소재는 자칫 대학생들의 촌극이 되어버릴 위험성도 높다. 너무 진지하면 극이 재미없고, 너무 가벼우면 인물들의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판타지로 가면 드라마의 힘이 생기지 않고 너무 리얼로 가면 편하게 웃을 수 없다.

뮤지컬 제작에서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뮤지컬의 소재로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뮤지컬의 기본적인 속성인 ‘판타지’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코미디뮤지컬에서는 ‘리얼’과 ‘판타지’의 거리 조절과 ‘가벼움’과 ‘진지함’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다.

코미디 작품 경험이 많은 표상아 연출은 형식과 공연의 템포 그리고 연기의 방식을 통해 이 작품을 촌극이 아닌 세련된 코미디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형식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방백을 통해 자연스럽게 펼쳐놓을 수 있게 했으며, 대사, 연기, 안무 및 장면전환의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서 관객의 호흡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절했다. 그리고 연극 연출가, 한솔의 아버지 등을 연기하게 해 음악적 정서를 길게 가져가는 대신에 연기적으로 코미디적 재미를 높여 놓았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배우들의 찰떡같은 연기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미덕은 뮤지컬 자체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는 것이다. 지금이는 자기 이름에서 연상되는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하고, '레베카' '썸씽로튼' '데스노트' 등의 작품들이 짤막한 패러디로 등장한다. 마지막 영상클립에서는 아예 대놓고 패러디를 하면서 뮤지컬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드라마 자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설정으로 전개되면서 뮤지컬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며 뮤지컬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놓았다.

모든 작품에서 대본, 음악, 안무, 연기, 미술의 완성도가 중요하지만 코미디의 경우는 드라마보다도 더 정교하게 계산돼야 한다는 점에서 완성도 높은 코미디 뮤지컬을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쉽지 않은 작업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 이야기를 다루는 이러한 소재로 만드는 작업은 난이도가 더 높다.
성공하는 신작 뮤지컬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방구석 뮤지컬'의 성공은 창작 뮤지컬에서 창작자들의 수준이 높아졌고,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현상의 결과인 셈이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김덕희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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