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마찬가지다. 자본을 투자한 주주는 회사의 장기적 성장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하며 합리적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주주 간 갈등과 대립이 불거지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의사결정 기능이 마비되면서, 기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최근 상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자칫 주주 간 협력보다 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가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이사 충실의무의 대상을 모든 주주로 확대하면 소액주주 보호가 달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이사 충실의무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다. 회사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인 '이사'가 의사결정을 할 때, 본인의 이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약 당사자 간 의무를 규정한 것인데, 그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하자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 또 수많은 개별 주주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에는 회사 또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회사의 성장이라는 큰 틀에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목표가 다를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지배주주를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주체로 묘사하며 소액주주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대립을 전제로 주주 간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지배주주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진다. 가령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는 1주 1표의 '주식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입법사례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제는 분리선출 인원을 현행 1명에서 감사위원 전체로 확대하자는 주장이 들려오고 있다.
대주주는 기업의 자본형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 주체다. 사업 실패에 대해서도 가장 큰 리스크를 부담한다. 대주주가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많은 국가들이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인정하고 있다.
덴마크의 칼스버그 재단은 차등의결권을 바탕으로 회사 지분의 29%를 가지고도 77%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미국도 기업이 상장할 때 창업주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한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외부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창업주의 지분이 희석되면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는 보통주(A주) 외에도 주당 10주의 의결권을 가진 B주를 발행하는데, 창업주인 마크 저커버그는 B주 발행량의 85%를 보유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정책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상법 개정 논의가 주주 간 갈등을 키우고 경영권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심사기준은 음식의 본질인 맛과 요리사의 창의성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기업 밸류업 역시 정부 개입은 줄이고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창의적인 활동을 촉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심사위원이 요리 과정에 개입하려 한다면 누구도 그 프로그램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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