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뉴 '탄호이저'의 탄생...바그너 아리아로 파고든 인간의 본질

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18 00:00

수정 2024.10.18 00:00

파이낸셜뉴스·국립오페라단 공동주최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17일 개막
필립 오갱 지휘·요나 김 연출 참여
2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파이낸셜뉴스와 국립오페라단이 공동주최한 오페라 '탄호이저'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2막에서 엘리자베트(윗줄 왼쪽)과 영주 헤르만이 화려한 행진곡과 함께 노래경연대회를 알리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파이낸셜뉴스와 국립오페라단이 공동주최한 오페라 '탄호이저'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2막에서 엘리자베트(윗줄 왼쪽)과 영주 헤르만이 화려한 행진곡과 함께 노래경연대회를 알리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2024년 가을 오페라 ‘탄호이저’가 신비의 베일을 벗었다.

파이낸셜뉴스와 국립오페라단이 공동주최한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는 한국에서는 45년 만에, 원어로는 처음 선보이는 전막 공연이다. 지휘자 필립 요갱과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의 참여로 기획 단계부터 수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17일 개막한 이 공연은 침대가 놓인 첫 장면부터 관객들의 선입관과 예상을 완전히 깨부쉈다. 기존 공연들이 주로 중세풍의 성이나 자연 속 연극무대에서 시작한 것과 달리 무대 장치나 소품, 인물들의 의상이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그린 듯 익숙하다.


하지만 요나 김 연출은 베누스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설명되는 파리 버전(1861년)과 드레스덴 초연 버전(1845년)을 섞어 만든 이번 공연에서 시대와 배경을 뚜렷이 규정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인간'을 이야기하기 위한 그만의 설계다.

극 전반에 걸쳐 무대 위를 누비는 라이브캠은 공연의 감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 화면을 시각적 장치로 적극 활용했다. 연기자들의 세세한 표정 변화와 미묘한 몸짓,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던 동선까지 카메라가 따라붙으며 관객의 눈이 되어준다. 무대 공간 역시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내면 상태에 따라 함께 변화하며 거울 역할을 한다.

'탄호이저'는 사랑을 통한 구원을 노래한 작품이다. 독일에서 내려오는 전설과 중세 독일에 실제로 있었던 노래 경연 대회라는 소재를 결합해 바그너가 작곡하고 대본까지 썼다.

1막에서 호텔 객실로 도망친 탄호이저가 갈등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1막에서 호텔 객실로 도망친 탄호이저가 갈등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13세기 초 기사 탄호이저가 영주의 조카딸 엘리자베트와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이 '참회와 구원'의 서사 아래 펼쳐진다. 서곡을 비롯해 순례자의 합창, 볼프람의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 등을 통해 특유의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1막은 엘리자베트와 결혼을 앞둔 탄호이저가 그녀의 지고지순함에 질려 호텔로 도망친 뒤 베누스와 쾌락을 즐긴다는 설정을 그린다. 무대 중앙엔 객실이, 양 옆에는 엘리베이터가 자리잡고 있다. 그의 주변으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등장하거나 엘리자베트가 나타나 탄호이저를 염탐한다. 붉은 드레스는 탄호이저 내면의 욕망과 환상을 투영한 것으로, 쾌락과 금욕 사이에 갈등하는 상황을 감각적인 대결 구도로 연출했다.

무대 공간 속 소품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탄호이저가 머무는 객실 벽에는 17세기에 활동한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의 '미다스와 바쿠스'가 걸려 있다. 물질(황금)을 추구하는 미다스와 이를 실현시켜준 술과 풍요의 신 바쿠스를 묘사한 작품으로, 욕망에 갇힌 탄호이저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2막에서는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음유시인들과 탄호이저의 노래경연대회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시인들은 하나같이 군복 차림을 하고 있다. 명령 체계를 따르는 군대 제복을 통해 규율이 지배하는 집단과 조직, 강박적 신앙을 드러냈다.

또 베누스는 욕망의 붉은색, 엘리자베트는 성녀의 색인 푸른색과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외투를 입어 여성으로서의 동질성을 나타냈다. 이는 바그너가 두 여성에게 공통된 여성성을 음악과 대본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3막에서 두 여주인공이 신부 베일을 함께 쓴 채 등장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3막에서 두 여주인공이 신부 베일을 함께 쓴 채 등장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3막에서는 두 여주인공이 신부 베일을 함께 쓰고 여성의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양립했던 두 인물이 사실은 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얼굴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3막 결말 부분에서는 탄호이저를 구원하기로 마음먹은 엘리자베트가 거울 조각으로 자살하고, 탄호이저 역시 권총으로 자살한다. 원작에서는 엘리자베트의 희생을 통해 탄호이저가 구원을 얻었다는 암시로 끝난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임신한 베누스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오며 막을 내린다.
이로써 비극 뒤에도 삶(생명)은 계속되며, '탄호이저'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인간의 이야기라는 울림을 남긴다.

탄호이저 역은 하이코 뵈르너와 다니엘 프랑크, 엘리자베트 역은 레나 쿠츠너와 문수진, 베누스 역은 쥘리 로바르-장드르와 양송미가 연기한다.
이외에 성악가 톰 에릭 리, 김태현, 최웅조, 하성헌, 유신희, 전병권, 강도호, 이준석, 김현정이 출연한다. 공연은 2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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