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실체와 허구, 공간과 사물의 연결 [Weekend 문화]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18 04:00

수정 2024.10.18 04:00

함경아 '유령 그리고 지도'
사회를 작동시키는 지시와 욕망을
'유령'이라는 환영으로 치환해 표현
마이클 주 '마음의 기술과 저변의 속삭임'
예상치 못한 장소에 오브제 놓거나 부착
늘어선 이젤, 전시장을 '작품의 숲'처럼
함경아 '유령 그리고 지도/ 시01WBL01V1T'
함경아 '유령 그리고 지도/ 시01WBL01V1T'
마이클 주 'Barcelona'
마이클 주 'Barcelona'
국제갤러리는 내달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사 갤러리 K1, K3 한옥에서 함경아 작가의 개인전 '유령 그리고 지도', 갤러리 K2에서는 마이클 주 작가의 '마음의 기술과 저변의 속삭임'을 각각 전시 중이다.

우선 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유령'이란 사회를 작동시키는 모든 지시와 욕망을 환영으로 치환해 총체적으로 지시했다. 즉, 실체가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 사이를 끝없이 횡단하며 그가 그려 나가는 세계(지도)를 선보이는 것이다.

K1 전시장에는 이런 불확실성을 뚫고 결국 돌아온 자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앙리 마티스의 종이 작업인 '컷 아웃' 작품 속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 2점에는 마티스가 샤를 보를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수록된 시 33편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것에서 착안해 그 시집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SMS' 시리즈에는 짧은 문구들이 숨어있다. '사랑에 빠졌다'(we fell in love)는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선거 유세장에서 자신의 외교 성과를 자랑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라는 표현을 썼던 데서 가져온 문구다.

현재 자수 프로젝트는 코로나와 남북 관계 경색 등으로 지난 2018년 이후로는 진전이 없는 상태다.
과거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자수 작품의 도안을 일정 부분만 제작해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수공예 장인들에게 전달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작품의 나머지 부분을 작가가 제안한 디자인에 따라 제작해 다시 남으로 보냈다. 함 작가는 돌아온 작품을 손질해 캔버스에 엮어 완성했다. 따라서 작품 완성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은 남북 관계다. 작품이 북으로 넘어가면 그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마냥 길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에도 함 작가는 작업을 해야 했다. 자수 작품을 양쪽에 놓고 그사이를 여러 줄의 리본 테이프를 가로로 길게 줄 이은 삼면화 형식의 작품은 기다림의 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K3 전시장에서는 새로운 작업이 놓였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화면처럼 수직, 수평의 격자에 추상표현주의의 이미지들을 풀어놓은 것처럼 다양한 직물로 된 리본 테이프를 직조한 작업이다. 함 작가는 "실체는 따로 있는 것 같다"며 "앞의 작품들이 기다림의 시간이라면, K3의 작품들은 나의 원시적이고 아날로그적 감정만이 진짜 같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장 K2에서는 한국계 미국 작가 마이클 주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전시는 '마음의 기술과 저변의 속삭임'이라는 타이틀처럼 '소프트 스킬(soft skill)'을 보여준다. 패널에 사물을 삽입하고 예상치 않은 위치에 오브제를 부착하거나 올려둠으로써 오브제와 이를 위한 건축적 지지체 사이의 상하관계를 갱신한다.

전시장 안쪽, 콘크리트 기단에 유리 패널이 끼워진 형태의 작업 'Untitled (after LBB)'(2024)는 이탈리아 태생의 브라질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 1914-1992)의 '유리 이젤'에 대한 오마주이다.

병렬로 늘어선 이젤은 전시장을 흡사 작품의 숲처럼 보이게 하고, 이로써 관람자들은 벽에 걸린 작품이 발산하는 역사적 위엄과 교훈적인 아우라를 전달받는 대신 눈앞에 서 있는 작품과 더 가깝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 유리 이젤에 해당하는 작품은 작가의 또 다른 연작인 실버 페인팅을 위한 플랫폼으로서도 기능한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여덟 개의 'Cosms(Catalunya 1-8)'(2016-2024)는 지질과 광물, 장소성과 장소 이동에 대한 탐구로서 이번 전시 전체에 흐르는 고고학적인 맥락을 강조한다.


마이클 주는 "일상적인 지각 기저에서 이뤄지는 교환과 연결, 언어화하기 어려운 영향 관계에 주목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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