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필자는 한은의 피벗이 다소 늦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미 물가상승률은 4월부터 전년동월 대비 2%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은의 물가목표는 2%이지만 이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 설정된 수치이고, 지금도 2%를 목표로 하는 것이 현실적인지는 고민의 여지가 있다. 반면 고금리로 인한 고통은 상당히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고금리 충격은 기업 부문이 더 크게 받고 있다. 기업 부문의 은행대출 연체율이 2년 전 0.3%에서 최근에는 0.7%를 오르내리고 있다. 한편 가계부문의 연체율은 2년 동안 0.2%p 올라 최근 0.4%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부문 연체율의 증가 폭이 가계 부문보다 훨씬 큰 것이다. 필자는 금리상승에 따른 기업 및 가계대출의 연체율 변화를 비교한 적이 있는데 기업대출 연체율이 금리상승에 훨씬 민감한 것으로 분석되어 현재 기업과 가계 부문의 연체율 차이를 설명해 준다. 금리 부담이 큰 상황에서 소비가 좋을 수가 없다. 소매판매액은 8월까지 지속적으로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왔다. 이런 경제상황을 볼 때 향후 과감한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한미 금리 차를 이유로 과감한 긴축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흔히 있다. 즉 미국에 비해 한국의 금리가 너무 낮으면 자본유출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염려에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도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국내 경기침체 장기화가 자본유출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실제 한미 금리차와 외국인 자본투자 간의 상관관계는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기업의 도산이 많아지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철수가 본격화될 수도 있다. 한편 금리인하로 인한 주택가격 불안에 대한 염려도 있다. 주택구매 시 금리가 구매결정의 중요한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택가격 안정만을 위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고금리를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침 지난 수개월 동안 상승세를 보였던 주택가격 상승률은 8월 이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주택가격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면 대출규제 등 정책을 통해 가격안정을 도모해 볼 일이다. 우리가 천문학적 가계부채를 걱정해 온 지가 이미 10년이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로 인해 경제의 큰 파열음이 나지 않았던 이유는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이 일정 심사를 거친 주택담보대출로 이루어져 있고, 가계가 부채를 계속 상환할 수 있도록 일자리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만약 고용 부문에 큰 충격이 일어날 경우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 상실로 가계부채 부실화, 금융기관 건전성 훼손으로 이어지는 위기상황이 올 수 있다. 따라서 고용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제공해주는 기업의 부실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중요한 수단이 금리인하이며 향후 과감한 정책기조 변화를 기대해 본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