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칼럼

[최진숙 칼럼] 힌턴의 오래된 생각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21 18:35

수정 2024.10.21 18:35

비주류 뇌연구로 노벨상
유머와 뚝심 AI 새 길로
이젠 위험 경고, 우리는?
최진숙 논설위원
최진숙 논설위원
그는 캐나다 토론토 시내에서 미국 타호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2012년 12월이다. 버스 뒷좌석에 누운 상태로 뉴욕까지 갔다. 거기서 캘리포니아 트러키까지는 기차를 이용했다. 다시 택시 뒷좌석에 드러누워 30분 동안 산길을 올랐다.
그렇게 시에라네바다산맥 북쪽에 있는 타호에 다다랐다.

당시 만난 뉴욕타임스 기자(케이드 메츠)에게 말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때가 2005년이었어요. 그것도 실수로 말이죠." 그는 10대 때 어머니를 대신해 실내 난방기를 들어 올리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그 탓에 50대 후반부터 말할 수 없는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그는 아예 앉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으로 파란을 일으킨 인공지능(AI) 대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77)의 이야기다.

2012년 그 험난한 과정을 감수하고 타호로 간 이유는 컴퓨터과학자들의 연례행사(NIPS) 참석을 위해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해 가을 제자 두명과 창업한 스타트업 DNN리서치에 관심을 표명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그곳에서 거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백발에 울 스웨터를 즐겨 입고 유머감각이 남달랐던 힌턴은 학자의 삶에 더없이 만족했으나 두 제자의 끈질긴 설득에 거기까지 갔다.

힌턴과 두 제자는 그해 봄 학계와 업계를 발칵 뒤집는 기술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깨고 기계가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신경망을 공개한 것이다. 인간 두뇌 속 신경세포의 구조를 수학적으로 모방한 신경망으로,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이 지금 AI 업계를 평정한 딥러닝 기술이다.

힌턴의 딥러닝은 인고의 시간 끝에 나왔다. 그는 쟁쟁한 학자를 대거 배출한 영국 명문가 출신이다. 부친은 곤충학자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었으며, 팔 하나로 턱걸이가 거뜬한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부친의 길을 따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의 청년기는 방황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물리학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으나 자신의 수학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뒤 철학을 포기하고 실험심리학으로 옮겼다가 결국 학계를 떠났다. 졸업 후 부친을 피해 런던으로 가 목수 일까지 했다. 그 생활 속에서도 붙잡고 있었던 주제가 다름 아닌 인간의 뇌였다.

"기억의 조각들을 신경세포망을 통해 저장하는 뇌의 활동이 3차원 이미지 조각들을 필름에 저장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10대 때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에 끌려 뇌 연구에 빠졌고, 결국 이것이 평생의 과업이 된 것이다. 그는 언젠가 인간지능 수준으로 생각하고 대화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연구가 인공지능 겨울로 분류되는 1970~1980년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인간과 비슷한 지능의 기계 가설은 1950년대에 나왔으나 기술의 벽에 막혀 진전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힌턴이 주목한 신경망 연결주의는 주류였던 마빈 민스키의 기호주의 추종자들에 의해 철저히 배척당했다. 미치광이, 이단아 연구자로 변방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가 즐겨 한 말은 따로 있었다. "오래된 생각이 가장 새로운 것이다." 과학자는 누군가 틀렸음을 입증하지 않는 한 생각을 절대로 포기해선 안된다는 의미였다. 결국 힌턴은 역전파 알고리즘을 활용한 딥러닝 기술을 완성해 AI 혹한기를 끝장낸 주역이 됐다.

다시 2012년으로 가보자. 타호에서 그의 DNN리서치를 인수한 곳은 구글이다. 그 후 AI 경쟁은 테크기업을 넘어 국가 간 전쟁으로 판이 극대화됐다. 힌턴은 구글에서 10년을 보낸 뒤 2022년 전격 사퇴했다. 시대를 바꾼 뇌과학자의 오랜 생각과 연구에 파열을 낸 것은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날 수 있는 AI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AI가 가져올 모든 위험을 대비하라고 그는 지금 외치고 있다. 노벨상 수상 회견 때도 했던 말이다. 메아리는 계속 커질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기술의 진보도, 윤리의 고민도 둘 다 한참 아래다. AI기본법도 하세월이다.
그러고도 AI 강국만 외치고 있다.

jins@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