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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헤즈볼라 삐삐폭발, 한국은 안전한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23 18:23

수정 2024.10.23 18:33

이병철 국제부장
이병철 국제부장
9월 17일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국제 뉴스에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화제가 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필자의 아들도 "휴대폰이 폭파될 수 있어?"라고 질문을 했다. 그만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레바논 전역에서 난데없이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무선호출기(삐삐)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수십명이 사망했고 수천명이 다쳤다. 현대사회에서 신체의 일부가 돼 버린 무선호출기 또는 무전기, 휴대폰이 갑자기 폭탄으로 바뀐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제 모두가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전자장비를 수류탄처럼 쳐다봐야 할 때"라고 논평했다.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 주역은 이스라엘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이스라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설은 있다. 폭발한 무선호출기가 대부분 대만업체 '골드 아폴로' 제품으로 확인됐지만 회사 측은 헝가리 업체가 상표 사용권을 받아 제조한 제품이라고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헝가리 정부는 자국 내 제조시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폭발한 무선호출기에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의 라벨까지 붙어 있어 일본의 연관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분명한 건 폭발은 있었지만 그 방법은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이제 '좋은 제품'의 정의는 바뀔 수밖에 없다. 값싸고 성능이 좋은 것에서 '누가 만들고 유통했느냐'가 추가됐다. 자유무역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90년대 초 서독과 동독이 통일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됐던 냉전은 종식됐고,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자유무역주의는 꽃을 피웠다. 제품을 싸고 잘 만들 수만 있다면 전 세계 어디에든 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전쟁 공포에서 벗어난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과 세금을 좇아 해외로 나갔다. 글로벌 공급망도 이때 탄생했다. 이는 세계적인 무역 확장과 저물가, 고성장을 뒷받침했다.

자유무역주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했던 중국이 기술패권에 도전하면서 기존 질서는 무너졌다. 글로벌 공급망은 글로벌 '동맹' 공급망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대신 경제안보가 중요한 화두가 됐다. 화웨이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우리도 2021년 요소수 사태를 경험했다. 중국에 의존했던 요소수가 거짓말처럼 막히자 화물트럭이 멈췄고 물류대란 우려까지 나왔다. 다음달 있을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이 기조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번 호출기 폭발은 경제안보를 넘어 물리적 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에 주는 교훈은 더욱 크다.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며, 최근 남북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까지 파견,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전쟁의 위기가 상존하는 한국은 자유무역주의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이미 구축해 놓은 상태다. 무역 중심 경제구조 때문에 전 세계 수백개 나라와 교류하며 다양한 물자들이 나고 들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힌 공급망은 보안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의도적으로 수년간 공급망에 침투하면 이를 적발해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사이버공격 등 소프트웨어 차원의 보안은 준비가 됐었다. 그러나 이번 이스라엘 공격은 하드웨어가 공격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을 때다. 경제안보를 넘어 우리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공급망 안보의 준비는 되었는가.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국은 테러 위협에 안전한가.

이병철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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