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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의 민심 깨기] 귀국한 딸네 부부가 살 집이 없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27 18:34

수정 2024.10.27 19:04

아파트 자금 내회사 넣어
같이 살며 사위옷 다림질
외롭지 않게 아이 갖기를
김행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전 청와대 대변인
김행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전 청와대 대변인
#1.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지 않나.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지 않나. 그런 것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한강 작가는 남편의 이 말을 듣고 아이를 낳기로 했단다. 그래. 이게 사랑이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 한강 작가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그렇게 키웠을) 아들과 막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들었단다. 수상 직후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선 "오늘 밤 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자축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 이게 가족이다.
언제나 함께하는 것.

#2. 딸네 부부가 해외파견 5년 만에 귀국했는데, 살 집이 없다. 파견 전, 아파트 전세자금을 당시 경영난에 시달리던 필자의 회사에 몽땅 털어넣었다. 이후 아파트 가격 폭등. 딸내미는 "전세 끼고 아파트 사놓고 간다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 망했다"고 원망이다. 에구, 내 팔자야.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했다. 이후 내 삶은 가사도우미(?). 주야장천 사위 옷 다림질에 이골이 났다. 다림질이 많아 허리가 아프면, 영화 닥터 지바고의 아내 토냐를 생각한다. 숯다리미로 라라와 불륜인 남편 옷도 다려줬는데, 뭘, 이까짓 것! 누가 다림질을 시키지도 않았다. 내가 좋아서 한다. 사위가 왜 이리 예쁜지. 같이 사니, 사위도 내 새끼다. 그래. 이게 식구다.

#3.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결혼하라,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말라. 그래도 역시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라고 썼다. 너무도 강렬해서, 여기까지만 유명하다. 그런데 이건 단지 서론일 뿐. 2년 후, '인생길의 여러 단계' '결혼에 대한 약간의 성찰:반론에 대한 응답, 유부남씀'에선 "그래도 역시 결혼하라. 왜냐면 결혼은 인류가 떠맡은 가장 중요한 탐구여행이며, 또 여전히 그렇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인생의 탐구여행?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탐구여행이 너무도 고달프다면? 아예 포기할 수밖에. 딸내미 부부를 봐도 서울에서 내집 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아이까지 생긴다면? 할머니가 될 필자도 겁이 덜컥 난다. 정부에선 일·가정 양립, 주거지원, 양육돌봄정책 등을 제공하고 있고 상당한 정책성과도 기대되지만 여전히 무한경쟁사회에 아이들을 내던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필자는 딸네 부부가 아이 갖기를 원한다. 왜? 우리네가 죽은 후, 외롭게 두고 싶지 않아서다. 내 딸과 사위가 영원한 내 편이듯, 그들에게도 언제나 같은 편이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눈감고 싶다. 내 편이 뭔가? 같이 밥 먹고, 스킨십하고, 웃고, 떠들고, 함께 싸워주고, 무조건 응원해주는 게 내 편 아닌가? 가족 아닌가? 그래서 가족의 가치가 중요하다. 가치를 먼저 세우고, 지원책을 제공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4. 지난 1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고독사 사망실태를 보면 고독사 사망자는 2021년 3378명, 2022년 3559명, 2023년 3661명이다. '1인가구의 급격한 증가가 원인'이다. 1인가구는 2021년 716만6000가구, 2022년 750만2000가구, 2023년 782만9000가구로 증가했다. 대한민국에선 15%가 혼자 산다.

고독사 감소지역도 있다. 세종, 광주, 경남이다. 비결은 지방자치단체가 주기적으로 안부를 확인하며 '일대일 사회적 가족관계'를 맺어 산책을 함께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젠 내 편을 만들어 주는 것도 정부 책임인 시대. 혈연이든 사회적 관계(반려인, 반려동물)로 맺어진 가족이든, 가족의 가치를 국가통치철학의 우선순위에 둔다면 저출산, 고독사, 자살은 물론 각종 범죄 등 사회적 병리현상도 줄일 수 있다.


영국엔 고독부 장차관까지 있고, '외로움 대처 네트워크'도 운영한다. 일본도 고립담당장관이 있다.
사람은 고독하면 죽거나 병든다.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

김행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전 청와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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