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죽음을 부르는 질주, 음주운전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0.27 18:34

수정 2024.10.27 18:34

정지우 사회부장
정지우 사회부장
누구는 해묵은 주제란다. 또 어떤 이는 그래봤자 순간 '반짝'할 뿐이지 결국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이들도, 죄의식·경각심이 부족한 이들도 여전히 존재할 것인데 그 시간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조언도, 그래도 수치는 감소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론도 펼쳤다. 아예 시큰둥한 표정은 또 어떤가.

맞다. 모두 옳은 말이다.
적절한 지적이고 당연한 반응이다. 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있었을 것 같은 음주운전. 100여년을 훌쩍 넘긴 오늘까지 또 신문 기사에 오르고 방송 카메라에 잡히니 사실상 지독히도 오래된 문제이긴 하다. 지금까지 근절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술 마신 상태에서 운전할 사람은 말려봐야 끝내는 할 것"이라는 주장도 어쨌든 그 나름의 일리가 있는 셈이 된다.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자.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2만4000~2만9000여건 사이를 오가다 2016년 처음으로 2만건 밑으로 떨어졌고, 지난해엔 1만3000여건으로 내려왔다. 사망자도 한때 991명(2007년)까지 치솟았다가 작년엔 159명으로 줄었다. 부상자 또한 최고점인 2006년 5만4000여명보다 큰 폭으로 감소한 2만여건이 지난해 수치로 기록됐다. 일단 전체 데이터는 그렇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

다만 데이터를 조금 깊게 들어가 보면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음주운전 적발 건수 가운데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만취운전은 2019년 8만3914건에서 2022년 9만4316건으로 3년 만에 12.5%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9만895건을 기록했다. 면허취소는 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부터 적용된다. 전체 수치는 감소 추세여도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운전하는 이들은 더 늘고 있다는 얘기다.

기자들이 술을 마신 것과 같은 상태에서 운전을 해봤다고 한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 제공하는 음주운전 가상현실(VR) 체험이다. 면허정지 수준 상태(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 0.08% 이하)에서 시속 50㎞로 서행했지만 운전석에 앉은 지 1분 만에 중앙선을 침범한 뒤 앞차와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 가운데 혈중알코올농도가 0.08~0.149%였을 때 사고를 유발한 경우가 41.9%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0.15~0.199%가 뒤를 이었다. 모두 면허취소 이상의 만취상태다.

경찰청 데이터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수치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분명 줄기는 했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한 해 150여명이 목숨을 잃고, 2만여명이 부상을 당하는데도 '감소'라는 단어에 만족해야 할까.

여기다 사망자·부상자 수치가 전부 음주운전자인지, 무고한 피해자는 포함되지 않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부상자도 마찬가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뺑소니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뺑소니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420명, 부상자 4만9562명 등 모두 4만9982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음주 뺑소니 사망자는 168명(40%), 부상자는 음주 1만236명(21%)이었다. 사고 후 조치했지만 사망·부상당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당연히 대폭 늘어난다.

따라서 지난 5년간 최소 수백명의 무고한 시민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은 이들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또 그들의 가족은 사랑하는 이들을 한순간에 보내야 했다. "음주운전 뺑소니는 피해자와 그 가족·지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는 중대범죄이며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제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8년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윤창호씨 사건 이후 마련된 윤창호법이 시행된 지 이미 5년이나 지났다.
어느 법정에서 음주운전 피고인을 향한 재판부의 질책처럼 그들의 아픔은 감히 가늠조차 해볼 수가 없다.

jjw@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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