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한 임원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있어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협력사들과의 관계도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삼성전자 위기설이 나온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 있어 전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진다. AI 반도체에 필수로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는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이뿐 아니다.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계 2위로 부동의 1위인 대만 TSMC의 유일한 대항마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3㎚ 이하 공정에서 TSMC에 밀리며 점유율 격차가 벌어진다. 현재 주력인 메모리반도체에서 리더십을 잃고, 차기 먹거리인 파운드리마저 경쟁력이 떨어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주성엔지니어링과 한미반도체를 떠올려 본다. 이들 모두 반도체 장비기업으로 전자는 전공정, 후자는 후공정 장비에 주력한다. 공통적으로 과거 삼성전자와 거래했으나 현재는 협력 관계가 없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여러 설이 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단절됐다. 한미반도체는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와 특허소송을 치른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삼성전자와 거래하지 않지만 반대로 SK하이닉스와는 활발히 협력한다.
공교롭게도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전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여기엔 한미반도체 'TC본더'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HBM을 만들기 위해 D램을 여러 층 쌓아 올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적당한 열을 가해 정밀하게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하는 장비가 바로 TC본더다.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HBM 생산에 필요한 TC본더를 전량 한미반도체로부터 도입한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최근 한미반도체와 거래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일본 업체 등에서 TC본더를 들여오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업계 최초로 원자층증착장비(ALD)를 선보인 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외 유수 업체에 공급 중이다. 이 장비는 반도체 원판(웨이퍼) 위에 필요한 물질을 균일하게 입히는 기능을 한다.
'흑묘백묘'라는 말이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이다.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혹여 과거에 집착해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는 일은 없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가 아닐까.
butter@fnnews.com 강경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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